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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ju-i gisun (Manchu language)

滿洲


금나라를 세웠던 여진족의 후손이자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들이 쓰 문자. 여진어라고도 한다. 여진족들이 쓰던 여진어는 만주어 또는 만주어의 조상 언어(말갈어, 몽골어 등)와 매우 가까운 언어였다고 추정된다. 


알타이 제어(가설) 퉁구스어족 남퉁구스어파에 속한다.


-위키백과 발췌


또한, 고구려와 발해를 구성하던 민족의 언어이기도 하다.




위 사진은 만한합벽체로 되어 있는 자금성의 건청문 판액(板額). 만주 문자로 '키얀칭먼(Kiyan Cing Men)'이라고 되어 있다.(사진출처:위키미디어 공용) 

 당연하지만 근고한어 발음이다. 표준중국어 발음으로는 구개음화가 일어나서 '치엔칭먼'.

문자는 위구르 문자에서 유래한 몽골 문자를 만주어에 맞게 개량한 만주 문자를 사용하며, 위에서 아래로 글을 쓰고 한문과는 달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줄바꿈을 한다.

 금나라에서 여진어를 표현하기 위해 따로 문자를 만들었지만 한자와 마찬가지로 표의문자였기 때문에 문자개수가 너무 많아 실생활에서 별로 쓰이지 않았고 금나라 멸망 이후로는 주로 구어로만 쓰였고 문자로 적을 때는 몽골문자로 적었는데 몽골문자로 여진어 발음 전체를 적을수 없었기에 상당한 한계점이 있었다. 1632년에 몽골문자를 개량하였는데 이것이 만주문자다.




베이징(北京, 북경) 옹화궁 팻말

왼쪽부터 몽골 문자, 티벳 문자, 한자, 만주 문자로 쓰여 있다





만주어는 만주 지방에서 쓰던 언어로 



지금은 구사하는 만주족이 18명 내외로 줄어 소멸될 위기에 처한 사어이다.

그것도 8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덕분에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



중국에서 자취를 감춘 만주어 관련 서적이 한국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게 훈민정음으로 된 만주어 번역본이었다.


조선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중국어 뿐만 아니라 만주어까지 한글로 번역해놨던 것.



모택동(毛澤東,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 때 대부분의 문화재를 태우고 부숴서 없애버렸는데, 

이때 만주어로 집필된 문헌도 모두 폐기되어 이 언어는 사어[死語]가 되어버렸다.



학계에서는 만주어가 사라진 줄로만 알았는데, 

세종대왕 덕분에 이 언어를 복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종대왕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잊혀졌을 언어.

최근 중국에서는 만주어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만주어를 배우기 위해 훈민정음을 공부하는데, 이유는 중국어로 직역된 책이 없기 때문이다...




노걸대[老乞大]라고 역관들이 사용하던 교본(漢語/蒙語/淸語 老乞大로 구성. 각각 한어 몽어 청어) 이 고려 말부터 있긴 했으나

청어(청나라 언어, 즉 초기 만주어)의 초창기 시절 음가 및 사용법만이 나와있어 완성된 만주어가 기록된 책은 없던 실정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중국인도 아니고 한국인 덕분에 부활하게 된 것, 그것도 한글 창조자들에 의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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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청나라

후금이 청으로 국명을 바꿈과 동시에 한어(漢語)와 함께 국어(國語)의 지위에 있었다. 청 정부는 관학을 세워 만주어를 가르치고 관리등용 시험 때도 만주어를 장려했다. 특히 만주인이 문관이 되려면 반드시 만주어와 몽골어의 번역 시험을 보도록 했다. 공식 문서는 만주어가 원본이 되었고 그것에 중국어를 덧붙였는데, 이러한 형식의 문서를 만한합벽(滿漢合璧)이라 한다. 그래서 지금도 자금성에 가면 한자와 만주 문자가 함께 적혀 있는 현판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강희제 대에 강희제가 강희자전을 편찬하면서 청 황실 내에서 중국어의 사용을 허가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서태후 시대에 만한합벽의 원칙을 폐지하여 중국어만 사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 후 만주족은 압도적인 한족문화에 동화되는 수순을 밟아갔고, 급기야는 만주어를 하는 관리를 따로 둬야 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결국 청은 양무운동 이후 사실상 중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청 멸망 이후에 만주어는 일상 언어로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된다.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청년기를 보낸 박정희와 김일성을 비롯한 이들 중 일부는 만주어에 능통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건 와전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면 만주에 들어선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에서는 맘대로 표준중국어를 '만어' 즉 '만주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결국 표준중국어에 능통했다는 것이 용어의 혼란으로 인해 와전된 것. 만주국에서 말하는 만주인은 한족과 몽골인이었고 만주국은 중국어와 몽골어러시아어가 형식 상 공용어였다. 만주족은 이미 한족화되거나 일부는 몽골인에 동화되어 버렸다. 그 당시에도 우리가 만주어라고 지칭하는 언어는 많이 쓰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공용어 중에 하나로 지정할 필요가 없었을 듯하다.

사멸위기

현재 만주어는 사멸 위기에 있다. 2007년 기준 만주어는 중국 동북지방의 헤이룽장성에 있는 마을의 80세 이상의 노인들 약 18명 정도만이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 보통 언어가 이 정도 갔으면 멸종은 시간 문제. 윤승운 화백의 이야기에서 유명해진 "1930년대 외국 학자가 만주를 이 잡듯이 뒤졌으나 간신히 두메산골의 노부부만 찾을 수 있었다. 누르하치가 통탄할 노릇."라는 이야기 수준은 아니지만 그거나 이거나 뭐.

현대 만주어의 현황은 이 기사를 참조. 불과 400년 전만 해도 날리던 민족의 언어가 바로 지금 사라져 가는 왠지 묘한 안습한 현실... 만주족들은 그래도 청조가 세워진 후 귀족이었기 때문에 사실 현재 중국인 중에서는 교육수준이 높다고 한다. 학계나 예술계에도 만주족이 많다고. 그런데 문화는 이미 한족에 흡수된지라(...)

만주족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신분증에 표시된 민족 표시뿐이고, 가끔씩 아이신기오로(Aisin Gioro)씨 같은 만주족 성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현재는 대부분 그것도 한족 성인 진(金)씨김씨로 치환되어서 이름 보고는 구별하기 힘들다. 중국의 진(金)씨는 조선족이 아니면 대체로 만주족이다. 현재 중국의 만주족 중에 만주어를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한족보다도 표준중국어 발음이 정확할 정도. 

청나라 시기 준가르부를 토벌했던 원정군들이 정착한 마을에서 만주어와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이 있다. 이들은 시버(Sibe, 錫伯, 병음 Xībó, 영어 Xibe)족이라고 불리며 만주족과 혈통적으로는 대단히 가깝다. 이들도 퉁구스 계통이며, 몽골계인 선비족 혹은 실위의 후예이거나 선비 혹은 실위족과 만주족의 혼혈이라는 얘기도 있다. 다만 자기들은 절대 만주족과는 관계 없다고 주장하는데동족 혐오?!, 실제로 정치적으로 후금/청 형성기에 만주족과 대립하던 종족이라 결국은 국경 지키라고 부족의 일부가 일괄적으로 지금의 신강으로 이주당했다. 그래도 문화적이나 언어적으로 보면 만주족이랑 매우 가까운 민족이라 어느 정도 말이 통하기 때문에 현대 만주어를 이해하기 위해 시버어가 이용되기도 한다.


2007년 헤이룽장성 싼자쯔(珊子穗) 마을에서 행해졌던 실제 만주어 구사자와의 인터뷰. 노인과 인터뷰하는 사람은 시버족. 앞부분은 거의 표준중국어며, 인터뷰에서도 표준중국어와 만주어를 함께 쓰고 있다(통역 목적으로 보인다). 중국어를 많이 들어본 사람이 듣다 보면 분명 중국어와 발음이나 성조가 전혀 다른 언어가 중간에 간간히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만주어다.

위의 동영상에 나오는 시버족은 만주어를 따로 배워서 이야기가 가능한 것이다. 시버어의 단어와 만주어의 단어는 비슷하긴 하나 완전히 같은 언어는 아니며, 조사면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또한 문자도 만주문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특유 발음에 맞추어 약간 개량한 시버문을 사용하고 있다.


뜻있는 만주족들이 만주어를 복원시켜보려고 노력 중이지만 글쎄……. 히브리어가 기적적으로 현대에 부활한 예도 있지만, 중국에 있는 소수민족들 대부분이 현재 모어를 잊고 중국어(한어)만 사용하고 있으며, 강력한 모국이 버티고 있는 조선족 같은 경우도 모어를 잊는 경우가 많아지는 실정에 전망은 밝지 않다. 그밖에 몽골의 울란바토르 대학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주어학과가 있지만 공부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다만 청나라 시대에 만주어로 작성된 엄청난 양의 기록 및 공문서들이 남아 있어, (게다가 이들 문헌의 상당수는 아직 번역, 해독이 되어 있지 않다.) 비록 일상어로는 사멸할지는 몰라도 문헌어로서는 상당 기간 존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 만주어

한국이랑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었던 만주족인 만큼, 만주어의 흔적은 아직도 함경도 지명이나 사투리에 꽤 남아있다. 두만(豆滿)은 여진어로 숫자 만을 가리키는 타이유만/따이유만(thyuman)을 한자로 음차한 것. 만주어에는 한국어와 상당히 비슷한 단어들이 몇몇 보이는데, 대표적인 예는 alin(알린, 오름·산), fulehe(풀러허, 뿌리), 무뚜리(龍, 한국말로 "미르") 등등. 정치범들을 유배하는 탄광으로 유명한 아오지도 만주어로 "타는 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아마 석탄이 나왔던듯. 순대 역시 만주어 senggi duha에서 나온 말이다. senggi는 피, duha는 창자를 의미한다. 만주의 지명인 치치하얼(치치하르), 하얼빈(하르빈) 모두 만주어 지명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한국인이 흔히 생각하는 중국인의 말투 ~해체는 중국어가 아니라 청나라 상인들의 만주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카이"같은 어말을 -해로 오해하게 된 것.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서는 알타이어학 연구를 위하여 만주어 수업을 전공선택 과목으로 개설하고 있다. 대학원에 다니시는 분들도 가끔 만주문자를 눈에 익히기 위해 학부생들과 이 수업을 듣기도 한다. 그리고 언어학과 관련된 학과들, 동아시아사 연구 등등.. 외에도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만주어 수업을 듣는다. 문자를 눈에 익히기 위한 연습 교재로 무려 청대에 제작된 목판본 문헌을 사용하는데 (당연히 원본 문서는 아니고 스캔본을 사용한다) 목판의 빈번한 인쇄로 인해 글씨의 가장자리가 흐릿해지거나 점이 떨어져나간 (심지어 쥐나 좀벌레로인한 피해일 수도) 경우가 있어 해석에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있다. 다만 만주어의 Phonotactics에 친숙한 사람이라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은 낮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은 영화 최종병기 활의 만주어 자문을 제공하기도 했고 일반인(실제론 중국 근세사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가끔씩 강좌를 열고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배워보기 바란다. 최종병기 활 때문에 만주어 강좌의 인기가 오르기도 했다.(#)

소멸한 언어, 만주어를 연구하는 이유는? #



타언어에 유입된 만주어

한국어(함경북도 방언)에 차용된 만주어

  • 순대 - 성이두하(senggi duha)
  • 사돈 - 사둔(sadun)
  • 쌔씨개(욕) - 사스헤이(sashei, 돼지)
  • 부스깨(아궁이) - 푸스쿠(fusku)
  • 어시(어버이) - 어시(exi)
  • 배재(울타리) - 바산(basan)
  • 야래(송어) - yaru

중국어(북경어, 동북어)에 차용된 만주어

청나라 통치기를 거치면서 북경어와 동북 방언에도 만주어 단어가 차용됐다.

  • 러러(勒勒) - 공허한 이야기, "러오럼비leolembi"(담론) 유래.
  • 모청(磨蹭) - 느려터지다, "모초moco"(느리다) 유래.
  • 좡커(撞克) - 귀신, 악령을 만남,"장쿠럼비jangkulembi" 유래.
  • 거지(胳肢) - 가려운 곳을 긁다, "거지허섬비gejihesembi" 유래.
  • 사오다오(哨叨) - 침착하지 않음,"소돔비sodombi" 유래.
  • 가이러우(該漏) - 중간에서 가로채다, "가임비gaimbi"(원하다) 유래.
  • 케이(剋) - 비판, "코이카삼비koikasambi"(싸우다) 유래
  • 마사(抹擦) - 구겨진 것을 펴다. "마침비macimbi"(몸을 쭉 펴다) 유래.
  • 텽(挺) - 아주 훨씬 "턴ten" 유래
  • 하라(哈喇) - 기름기 있는 것이 상하다, "하르har"(검은색) 유래.

만주어에서 유래한 지명

한국 지명

  • 아오지(경흥군) - 불타는 돌
  • 나단산(경원군에 있는 살바우산의 별칭) - nadan(일곱), 나단산은 봉우리가 일곱개이다.
  • 이판령(마천령의 옛 지명) - 소
  • 주을(경성군) - 뜨거운 물
  • 보을천(회령군) - 버드나무
  • 백안(종성군) - 수소

중국 지명

  • 연길시(延吉市) - '연기가 피어오르다' 만주어의 의역
  • 연집(烟集, 연길시의 옛 지명) - durgatu의 의역
  • 훈춘시(珲春市) - huncun(눈썰매)
  • 목단강(牡丹江) - 구불구불한 강
  • 장백산(長白山, 백두산의 중국식 표기) - golmin šanggyian alin(길고 하얀 뫼)
  • 길림(吉林) - "jilin ula"(강가)
  • 해란강(海蘭江) - hailan ula(느릅나무 강)
  • 송화강(松花江) - sunggari ula (흰 강)
  • 하얼빈(哈爾濱) - 어망을 햇볕에 널어 말리는 곳
  • 아성(阿城, 금나라의 발상지) - arecuka(상서롭다)의 약칭
  • 두만강(豆滿江) - "tumen secin"(만(萬)개의 수원(水原))

러시아 지명

  • 사할린 섬 - "sahaliyan ula angga hada"(검은 강 어귀 봉우리) 유래



하얼빈의 얼음축제 '빙등제'

얼음궁전 


하얼빈 성 소피아 성당 전경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 행정의 총본산인 국무원 청사






만쥬



Mix Veg Manchurian

Gobi Manchurian

일본에 점령당한 괴뢰국이었던 전력이 있는지라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까지 스며들어 있다.




일제시대의 만주국 깃발

국장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점령한 땅이다.

알본제국이 대륙에 지은 괴뢰국


삼국시대 당시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던 곳이다.

백제가 망한 후 신라의 김유신과 김춘추가 나당 연합으로 외세를 끌어들여 당나라에 뺏김

일제강점기 영토

조선

대만

만주

중국 일부

러시아 일부

다민족 독립 시 만주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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