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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경 스페인에서 발생한 유물 비 고의적 반달리즘 사건 내지는 황당 사건. 미술학이나 종교의 입장에서는 비극이지만 그 결과물이 지나치게 형편없는지라 인터넷 예술사(史)엔 망가져서 유명해진 것들로써 영향을 끼쳤다.



전개
벽화의 훼손
스페인 사라고사 주 캄포 데 보르하(Campo de Borja) 지방의 중심지인 보르하(Borja) 마을에 소재한 미세리코르디아 성지(Santuario de Misericordia) 성당에는 19세기 화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스(Elías García Martínez)의 프레스코 화(畵)인 〈에케 호모(Ecce Homo)〉가 있었다. 에체 오모는 요한의 복음서 19장 5절에 나오는 본티오 빌라도의 "이 사람이로다"는 발언을 라틴어로 쓴 것.[1] 이 그림은 세월이 흐르며 습기 등으로 인해 상당히 손상되어 있었는데 80대 할머니였던 세실리아 히메네스(Cecilia Giménez)가 안타까워하며 이것을 복원하겠다고 덧칠했더니…….




왼쪽부터 원래 그림, 세월이 지나면서 손상된 그림, 그리고 덧칠해서 훼손된 그림.

이렇게 더 심하게 훼손되고 말았다. 그래서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가 아니라 〈Ecce Mono[2](이 원숭이를 보라)〉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 히메네스 할머니는 그림을 매우 잘 그렸으며 이 그림의 복원을 맡게 된 것도 그녀의 그림 실력을 알고 있던 성당 주임 신부가 허가를 내줘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가 불행히도 프레스코화에 요구되는 기법의 차이를 몰랐다는 것이다. 사실 프레스코화는 일반적인 그림을 그리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기술이 요구된다. 벽 위의 석고가 마르기 전에 수정도 없이 빠르게 쓱싹 그려내야 하는데 그런 특성을 전혀 몰랐던 데다 생각하지도 않고 일반 캔버스에 그리듯이 슬슬 그리니 당연히 저런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즉, 원래는 나름대로 신경 써서 그렸는데 시간이 지나는 바람에 저렇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 "복원"은 미완성 복원이었다고 한다. 히메네스의 말에 따르면 반쯤 진행하다가 이틀간 여름 휴가를 다녀온 뒤에 완성하려고 했는데 여름 휴가를 간 사이에 언론사에서 대서특필을 하는 바람에 "복원"을 완성시킬 여지가 없어졌다는 것.

하지만 기법의 차이를 알아서 그림이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해도 제대로 복원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복원했다는 그림의 아래쪽 두루마리의 말림 같은 부분은 완성도를 떠나서 원본과 달랐다.[3] 즉 복원하겠다는 그림의 훼손되기 전 기록조차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그냥 덧칠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림 실력이나 복원 기술을 떠나 문제가 심각하다.

거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된 미술품도 왜 복원을 하지 않고 그냥 두는 것인지, 설령 전문가의 손을 빌려 하는 복원임에도 불구하고 미술품 하나를 복원하는 데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훼손된 미술품을 복원하려면 해당 미술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훼손된 경위가 무엇인지, 훼손이 미술품에게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추가 상해 없이 온전히 훼손된 부분만 복원할 수 있는지, 그럴 수 없다면 복원할 때 미술품에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되는지 등등 연구해야 하고 알아야 할 것들만 수십 가지가 넘는다. 단순히 벗겨진 부분에 색 채워넣고 금 간 부분만 메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일본 제국은 일제강점기에 당시의 최신 기술인 콘크리트를 써서 나름대로 석굴암을 복원하려고 했지만 상술된 요소를 모르고 고려하지 않았던 탓에 습기 문제가 생겨서 해방 이후 한국에서도 석굴암 복원 및 유지보수에 애를 먹어야 했다. 당시 일본이 참고했던 서양의 콘크리트 복원 건축물들도 마찬가지.

이 사건이 터지자 당연히 성당 측과 신자들도 비난하며 펄펄 날뛰었다. 법적 처벌까지 거론되었던 모양이지만 할머니가 그림을 파괴할 의도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결론이 나서 처벌은 무위로 돌아갔다. 스페인 문화 당국도 인정한 사실. 그러다보니 이 사례는 본의 아니게 사실상 반달리즘 아닌 반달리즘이 되었다. 심지어 마르티네스의 손녀조차 이 작품(?)을 보고 좌절감을 느꼈다고... 게다가 전문가들을 통해 복원 가능성 여부를 논의했으나 전문가들도 너무 심각하게 훼손되어서 복원이 도저히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다행히 화가가 예수 초상화를 프레스코화로 그리기 1년 전에 유화로 그린 작품이 2016년에 발견되어서 작품의 원형을 알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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