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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중위 시절로 추정되는 사진
백범 김구 묘소 앞에서 울부짖는 안두희

백범 김구 주석은 한반도의 남북 분단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북한 김일성 수령을 만났다.



김구와 김일성이 합작하여 통일조선을 만든 후
공산권인 소련과 중국의 섭정통치를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김구 주석이 수반이 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 서기장 스탈린의 심복이자 국가보안위원회 KGB 요원이었던 김일성은 공산주의의 종주국 소련의 비호를 받아 정적들을 모두 제거해나갔다.


조선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 원수 등 여러 거물급 인사들이 숙청당하였다.



대한민국에서조차도 허무하게 피살당한 김구 선생이 김일성을 이길 수는 없었으리라 짐작된다.

이승만과 김일성은 당시 세계를 양분하는 미소 초강대국의 막대한 지원세력을 등에 업고 있었기에 암살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안중근은 1909.10.26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였고
안두희는 1949.06.26에 김구를 암살하였으며
김재규는 1979.10.26에 박정희를 암살하였다.

한국전쟁은 1950.6.25에 일어났다.

안두희와 김재규는 왜 작전일을 이렇게 맞추었을까

안중근은 일제로부터 조선을 구하기 위해 이토 총리를 저격하였다.
10.26의 10이 한반도 전체라면 절반은 5.26인데
6.26이면 북한보다 남한이 크다는 의미로 추정된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조선인민공화국을 압도하였다.



예를 들면 11.26은 만주벌판의 시작을 의미하게 된다.

안두희는 미군방첩대 소속 비밀요원이었다.

5를 6으로 올려버린 이 짓이 가소로웠던 김일성 수령이 다른 6을 5로 내려버린 것이다.

그게 육이오 전쟁이다.

현 미 중앙정보국 CIA와 북한 국가보위부에 극비문서로 보관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정희는 핵전쟁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소련에는 엄청난 양의 핵무기가 이미 존재했다.

박통이 전쟁을 일으켰다면, 북중러 연합군이 미군이 들어오기도 전에 한반도를 집어삼켰을 것이다.

3차 세계대전이 핵전쟁으로 치닫았을 것이다.

김재규 중정부장은 한반도 남북한 우리민족 모두를 살리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안두희 소령은 남한만이라도 구원해야 했기에

민족의 영웅 백범 김구 선생님을

끝까지 위인으로 남으시게 되도록 하기 위해 총탄으로 쏴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



암살자 안두희, 그는 한국 역사상
가장 더러운 피를 뒤집어 썼다.








안두희 공판기록

변호인 : 살해경위를 상세히 말하라.
안두희 : 나는 선생에게 '그런 말을 하시는 선생을 어찌의심하지 않겠습니까? 저마저 선생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정당이나 언론계에서는 모두 선생을 공산당과 악수한다고합니다. 오늘을 꼭 선생님의 본심을 확실히 알고야 돌아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더니, 선생은 대노하시며, 이 놈이 무슨 소리를하느냐고 크게 떠들었다.
나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30여 년 간투쟁한 탑을 지금 선생님 손으로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지금 이 때가 바로 선생님이 개심할 때입니다. 지금도 늦지않으니 본심으로 돌아가서 회개하십시오' 하였다.
그랬더니 선생은 크게 노하시며,'에이 고약한 놈, 나에게 반동하는 놈은 국가와 민족의 반역이다' 하고 말하였다.
나는 이 순간, 틀림없이 션생을 국가의 반동이라고 생각했다. 국가를 위하여 선생을 죽이는 것이 좋겠다고 나는 단정했다.
국가의 장래를 위하여 선생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결심했다.

요약- 김구를 존경해 심복을 자청하였던 안두희는
김구가 김일성과 손 잡았다는 사실에 실망해 자기 손으로 죽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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