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 백작이 설계한 최초의 비행선 제플린 LZ1
그는 독일 육군의 군인으로 보불전쟁에 참가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육군 중장으로 퇴역한 후 외교관을 지냈지만 만악의 근원 빌헬름 2세와의 의견충돌로 관직에서 쫓겨난다. 이후에는 비행선을 연구했지만 국가에서는 '그런 쇳덩어리가 날아다닐 리가 없잖아?'라면서 지원을 해주지 않았고, 자기 돈으로 비행선을 만들어서 연구를 계속한다.
그의 비행선은 LZ1은 1900년 7월 2일에 완성되어 첫 비행을 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고, 이를 개량한 LZ2와 LZ3을 만들었으며, LZ3은 1907년에 성공적으로 비행함으로서 어느 정도 관심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한다. 이후 그는 LZ4를 만들었고, 이 비행선을 본 독일 정부는 "24시간 동안 성공적으로 비행하면 지원해줄게"라고 약속한다. LZ4는 1908년 6월 20일에 비행을 시도했고 이 비행은 많은 사람들의 큰 관심을 불러모았지만, 폭풍을 피하기 위해 착륙했다가 사고로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 사고로 전 독일이 울었다. 모든 독일인이 이 소식을 듣고 슬퍼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체펠린 백작에게 새 비행선을 만드는데 쓰라고 성금을 보냈고, 독일 정부는 "실패했으니 돈 안 준다"고 하려다가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서 체펠린 백작에게 지원금을 보내줘야 했다.
이후 체펠린 백작은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고, 그의 비행선 개발은 모든 독일인의 지지하에 성공적으로 계속되게 된다. 그가 얼마나 유명했는지 신문 만평에서 유럽의 열강들을 비행기로 표현하면서, 독일만 비행선으로 그려놓았을 정도였다. 이 외에도 그의 비행선이 장례식장 위를 지나가자 장례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독일 국가를 불렀고, 그의 비행선이 날아오지 않자 사람들이 짜증을 냈으며(!), 그의 비행선에 비행허가를 내주지 않았다고 의심을 산 도시의 민심이 흉흉해질 정도였다. 결국 이 도시의 높으신 분들은 "우리도 비행선이 보고 싶다"는 긴급 성명을 발표해야 했다. 관련 내용은 '비행선, 매혹과 공포의 역사'라는 책에 나오니 참조하자.
그러나 체펠린 백작의 본래의 의도인 병기로서의 활용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투입된 비행선들은 전략폭격이라는 개념을 현실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는 있지만, 심리적인 측면은 몰라도 실제로는 그리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여담으로 배틀필드1 에 출현한다.
사진은 역대급 최대 규모이자 최후의 비행선 힌덴부르크 호
정식 명칭은 LZ 129 Hindenburg. 위의 힌덴부르크 원수의 이름을 땄다.
나치 독일의 비행선.
설계도
비행선으로는 유례 없이 크고 아름다운 물건이었으며 그 길이는 245m에 달했다.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감이 안오는가? 비스마르크급 전함이나 야마토급 전함 같은 전함이 하늘을 날아 다닌다 생각해보자. 현존 최대 덩치의 제트 여객기인 에어버스 A380의 길이가 힌덴부르크의 1/3에도 미치지 못하는 72.73m이고,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안토노프 설계국의 An-225 조차 84m 밖에 안된다.
또한 내부는 꽤 고급스러웠고, 승객실에는 침구와 세면대 등 생활시설이 잘 구비되었으며 레스토랑과 오락시설들도 잘 정비되었다. 가구들은 바우하우스 스타일로 꾸며졌으며 금속으로 특수제작된 피아노까지 있었다! 또한 기압조절장치와 전기라이터 등 독일의 비행선 기술을 접목시킨 다양한 안전장치를 설치하였다.
사실 이 당시 비행선은 차기 여객기로 주목을 받았지만 편도티켓만 400달러로, 지금으로 따지면 약 5000달러에 달하는 등 최고위층의 전유물이었다. 비교를 하자면 편도티켓 사는 가격으로 미국에서 자동차를 살 수 있었고, 왕복티켓 사는 가격으로 미국에서 집을 살 수 있었다!
1937년에 수소를 가득 채웠던 이 비행선이 미국 상공에서 정전기로 인해 폭발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사실상 아직까지도 처음 발화의 이유는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승객 13명, 승무원 22명, 지상요원 1명 등 36명이 숨졌고 61명은 살아났다. 비행선의 구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고의 원인은 헬륨용으로 설계되었지만 당시 세계최대의 헬륨 생산국이었던 미국이 독일의 주변국 침략에 대한 제재조치로 헬륨을 팔지 않아 수소를 채워넣어 운행하다가 생긴 참사.(헬륨은 굉장히 안정한 물질이지만, 수소는 가연성, 폭발성 기체이다). 사실 당시 수소는 헬륨에 비해 가격도 저렴했으며 독일은 수소로 인한 사고를 한 번도 일으키지 않으면서 안전에도 신경을 썼다.
수소뿐만 아니라 비행선 표면에 발라져 있던 금속성 도료의 테르밋 반응이 연소를 폭발적으로 가속화 시켰다고 한다. 디스커버리 채널의 Mythbusters에서 이 가설에 대해 검증하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테르밋 반응을 일으킨 쪽의 모형 비행선이 그렇지 않은 쪽에 비해 월등히 빠르게 연소되었다. 실제 참사 당시 촬영화면을 분석한 결과 힌덴부르크호의 연소도 테르밋 반응을 보인 것처럼 폭발적 연소와 짧은 연소시간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당시 힌덴부르크의 사고를 보도했던 허버트 모리슨는 인류의 높은 기술과 꿈이 서려있는 거대한 비행선이 불타 추락하는 모습을 보며 느낀 참담한 심정을 그대로 보도했는데, 여기서 나오는 "Oh, the humanity! (오 인류여!)"[6]라는 절규가 유명하며 이 목소리는 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도 등재되었다.
그리고 그 보도가 담긴 레코드[당시에는 동시녹음을 할 수 없엇고, 녹음은 SP음반에 짧게 할 수 있었다]는 국립보존기록관에 보관되었는데, 2001년-2010년 사이에 도난당했다가 회수하였다.
이 일 이후로 비행선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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