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유사에서는 527년에 22세였던 이차돈이 고민하던 왕에게 가서 "저의 목을 베시면 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고민하는 법흥왕에게 "저의 목을 베어 왕의 위엄을 살리면 신하들도 더 이상 반대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조언했다. 결국 법흥왕은 이를 받아들이고 신하들 주위로 군대를 배치해놓고 "왕의 사찰을 짓는데 일부러 지체시키는 자가 누구냐?" 하고 하문하자 겁에 질린 신하들이 이차돈을 지목해 이차돈은 왕을 거스른 죄로 목이 베인다. 이차돈의 목을 베자 흰 젖이 한 길이나 솟구쳐 올랐고 하늘을 가리며 온 땅이 흔들리며 꽃비가 내렸다. 그리고 북산의 서쪽 고개에 장사 지내주고 좋은 땅을 골라 이차돈을 위로하는 절인 자추사(刺楸寺)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서는 528년에 이차돈이 왕에게 "저의 목을 베어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불교를 일으키소서."라는 조언을 하였다. 이를 받아들인 왕이 신하들을 모아놓고 불교 도입과 관련되어 질문을 하자 신하들이 "중죄를 내려도 우리는 반대할 겁니다."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때 이차돈이 "불교의 심오함을 모르는 신하들이 잘못되었습니다."라며 나섰고 이에 법흥왕이 "여러 사람들의 말이 단단하여 이를 깨뜨릴 수가 없구나. 너만 홀로 다른 말을 하니 양쪽 모두를 따를 수는 없다."라며 목을 베어 버린다. 그리고 목에서 흰 피가 솟자 더 이상 신하들이 불교를 헐뜯지 않았다고 하였다.
해동고승전에는 529년에 26세였던 이차돈이 법흥왕에게 "소신이 대왕의 명을 구실로 사찰을 건립할 것이니 대신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대왕께서 소신의 목을 치시면 이적이 일어날 것인즉 이로써 불법을 세우소서."라고 진언했다. 이에 법흥왕은 처음에는 "죄 없는 사람을 차마 죽일 수 없다"고 반대했지만 결국은 이차돈의 제안에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그 다음날 이차돈은 "대왕의 명을 받들어 사찰을 짓겠다"고 천경림(天鏡林) 숲의 나무를 마구 베었는데 귀족들이 가만둘 리가 없었다. 결국 이차돈은 국문을 받았는데 법흥왕은 "네가 왕명을 사칭했으니 마땅히 목을 쳐야 한다"면서 참수형을 내린다. 이차돈은 처형 전에 "내가 죽을 때 이적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이차돈이 참수되니 그 목에서 흰색 피가 솟아나오고 꽃비가 내리고 땅이 요동치는 등의 이적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이 덕분에 불교가 공인되었다고 한다.
이차돈 순교비에는 염촉이 찾아와 왕을 설득하고 이후 궁궐에 칼을 찬 사람들로 사방을 방비하게 한 위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신하들에게 "내가 불법을 믿고 절을 지으려고 하니까 반역을 꾀한 놈이 있다던데?"라고 물었다. 이에 신하들은 "저희는 절대로 반역을 꾀한 적이 없습니다."라며 벌벌 떠는데 이차돈만은 왕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이에 법흥왕이 이차돈을 불러 목을 베었는데 흰 젖이 하늘로 치솟고 꽃비가 내리며 땅이 울렸다고 한다.




하얀 피 백혈白血은 정액을 의미하며
꽃의 비 화우花雨는 밤꽃을 의미한다


이차돈은 어린이들을 구한 부처다
서기 2025년 양력 5월 5일
불기 2569년 음력 4월 8일
단기 4358년
부처님 오신 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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