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인은 한자로 한 글자 성씨와 두 글자 이름을 가지는 것이 일종의 국룰처럼 돼 있다. (예시 : 노무현盧武鉉)
보통은 이 한자의 뜻으로 의미를 부여하거나
그냥 듣기 좋은 소리부터 정한 뒤 괜찮은 한자를 끼워맞추는 식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보통 이름을 지을 거면 자기네 말로 짓는다.
예를 들어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게르만계 언어에서 사람이름을 의미하는 접두사 will과 투구를 의미하는 helm에 '창을 흔든다'라는 뜻의 Shake spear이라는 성을 붙인 식이다.
보다시피 전부 게르만계 고유어로 이름이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이상하게도 순수 한국어가 아닌 짱깨식의 한자 3글자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3글자 이름을 하다못해 일본인처럼 고유어로 읽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옛날 중국 발음으로 읽고 있다 (한자 음독)
우리가 짱깨 속국도 아니고 도대체 왜 이딴 작명법을 사용하고 있는 걸까?
사실 한민족이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지었던 건 아니다
예전에는 당연하게도 순수 한국어로 이름을 지었고, 애초에 중국에서 유래한 성 시스템도 사용하지 않았다.
신라인을 예로 들면
출신 마을명 + 이름 + 관직을 순서로 이름을 지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특별히(주로 왕족이어서) 성씨를 가지고 있는 경우 마을명 대신 진짜 성을 사용하되, 소리가 아닌 뜻으로 읽었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잠깐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인들의 이름을 보자
十二年辛未 王命<居柒夫>及<仇珍大角湌><比台角湌><耽知迊湌><非西迊湌><奴夫波珍湌><西力夫波珍湌><比次夫大阿湌><未珍夫阿湌>等八將軍 與百濟侵髙句麗 百濟人先攻破平壤 居柒夫等乗勝 取竹嶺以外髙峴以内十郡
(진흥대왕) 12년 신미(辛未 551)에, 왕이 거칠부(居柒夫) 및 구진 대각찬(仇珍大角飡), 비태 각찬(比台角飡), 탐지 잡찬(耽知迊飡), 비서 잡찬(非西迊飡), 노부 파진찬(奴夫波珍湌), 서력부 파진찬(西力夫波珍湌), 비차부 대아찬(比次夫大阿湌), 미진부 아찬(未珍夫阿湌) 등 여덟 장군을 명하여, 백제와 더불어 고구려를 침략케 하였다. 백제 사람이 먼저 평양(平壤)을 쳐 부수니, 거칠부(居柒夫) 등은 승세를 타고 죽령(竹嶺) 이외 고현(高峴) 이내 (고구려의) 10군(郡)을 취하였다.
여기서 등장하는 거칠부라는 사람은 문헌에 따라 황종(荒宗)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황이 거칠 황(荒)임을 생각하면 전자는 소리를 받아적은 것으로, 후자는 뜻을 받아적은 것으로 보인다.
즉 당대 사람들끼리는 거칠부라고 부르되 가끔 글로 이름을 적어야 할 때는 荒宗으로도 적었다는 것이다.
이때 거칠부는 왕족이어서 김이라는 성씨가 있었고, 이 김을 김이 아닌 '쇠'라는 뜻으로 읽었다.
이를 토대로 당대 김거칠부의 이름은 '소로 게딜보레'라고 읽혔을 것으로 보인다.
구진 대각찬과 서력부 파진찬은 성씨가 없고 마을 이름을 앞에 붙여
각각 '한게보레 고로도리딜 한시볼간기' '세릭보레 바돌간기'로 읽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다시피 중국인이나 베트남인보다는 몽골인, 일본인과 같이 이름이 길고 화려하다.
그럼 도대체 왜 이 간지나는 이름을 버리고 세 글자 가짜짱깨 이름을 사용하게 된 걸까?
한국인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서서히 중국화 하는 양상을 보여 콕찝어 무엇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일차적인 원인은 고려에 있는데, 잠시 고려 개국 초기의 상황을 보자
“씨~발 드디어 후백제 머가리 땄다. 이제부터 중앙에 세금 내라”
"(대충 존나 혼란한 고려 초기의 한반도) ? 느금마요"
그렇다.
고구려 유민계 패서호족 반란으로 시작된 고려는 말이 통일이었지, 실상은 각종 지방 사족들로 자잘자잘하게 쪼개져 있었다.
그리고 그 호족놈들은 신생 고려 정부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상황
결국 고려 건국이후 최대 목표는 이 지방 사족들을 중앙 정부의 통제 아래에 두는 것이었고, 이것을 위해 가장 유용한 정책이 과거제였다.
(대충 고려 임금)
“자 오늘부터 과거제를 할 거야. 합격하면 중앙 정부에서 큰일을 할 수 있어”
(중앙 관료가 되고 싶은 호족들)
“오 우리도 드디어 중앙 관료가 되는구나!”
“ㅇㅇ 너만 오면 출발할거니까 얼른 여기 이름하고 성 써라”
“??? 난 성이 없는데?”
당시 지방 사족들은 과거제를 보는 데에 필요한 성이 없는 경우가 상당수였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성이 없음?"
앞서 말했다시피 왕족이 아닌 고대 한반도인은 출신 마을 이름을 성’처럼’ 사용했다.
그러나 부계혈통을 의미하는 중국식 성과 출신 마을 이름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진짜 중국식 성을 가진 사람은 김씨 이씨 박씨를 포함한 소수의 왕족이나 그에 준하는 초특급 귀족 출신밖에 없었다.
근본이라곤 없이 성 하나 먹고 동네 힘쎈사람이 된 호족들이 그 성을 가지고 있을 리 만무했는데,
그런 지방 잡 호족들에게 고려 중앙 정부는
중국식 성을 하나씩 마련해서 올 것을 주문한다.
"과거 볼 거면 성은 필수야. 그냥 하나씩 만들든가 알아서 구해와"
"아 예;;;"
대충 수긍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고려 호족들은 속으론 좆같았을 것이다
새 성씨를 만들어 단다는 건
'저는 김이박이나 극소수의 중국계 귀화자들과 달리 무근본 개쌍놈 출신입니다'라고 밝히고 다니는 꼴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호족들은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낸다
“...그럼 이미 있는 중국 성씨로 내도 됩니까?"
“?”
"그게 사실 저희 조상님이 중국인이었거든요"
그렇다. 고려인들은 자기하곤 혈연적으로 아무 연관도 없는 중국인들의 성씨를 무단 도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희가 사실 13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진시황 밑에서 벼슬을 한 송(松)씨입니다."
"근데 족보를 잃어버렸다가 어제 막 되찾았어요ㅠㅠ"
"족보에 따르면 저희는 진나라가 망하면서 한반도까지 내려온 유서깊은 가문입니다ㅠㅠ(수상할 정도로 깨끗한 족보를 내밀며)"
이런식의 족보 위조가 매우 횡행해서 한국인들은 토착 성씨 몇개(김이박 등)를 제외하면 대부분 본관이 중국이지만
정작 유전자를 까보면 중국인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진자 귀화자 출신도 있음, 특히 조선 중기 이후에 귀화해서 위조할 여지가 적었던 가문)
그리고 이런 식으로 아무 성이나 차용하다 보니 부작용도 같이 생긴다
“성이 松이고 이름이 吉童이라고요? 그럼 소나무 착한아이라고 읽나요? 아니면 소나무 좋은아이?"
"ㄴㄴ 송길동"
"???"
"아니 난 사실 중국인이라니까? 이름까지 중국식으로 지은 거 안 보이냐? 지금 내 혈통 의심함?"
이렇게 이름 자체를 중국식으로 짓는 게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진짜 근본이 있는 가문, 예를 들어 김씨의 경우 '쇠'로 읽었지만 점차 다른 가문을 따라 김씨로 읽는 게 국룰이 되어갔다.
이런 식으로 한국인들은 점점 관료로서의 가짜 중국인 이름을 짓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아예 고유어로 이름을 짓는 걸 그만두게 되었다.
"(에효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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