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중일 전쟁 당시 중국은 오랜 기간 지속된 극심한 내전과 사회 혼란으로


병사들에게 기본적인 화기조차 지급하기 힘들 정도로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절이였음



중국을 침략한 일본도 대공황으로 인해 상황이 여의치는 않았음


일본이 중국을 침공한 이유는 다른 것도 많이 있겠지만 그 중에는 부족한 재정을 중국에서 약탈해 충당하려는 의도도 있었음


그래서 일본군도 겉보기와는 달리 보급이 상당히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였음






기술의 한계가 명확하고 보급도 힘들었던 중국군은 모든 병사에게 총을 들려주지 못하자 과거부터 쓰던 대도를 선택했음


시골 농촌에 있는 대장간에서도 생산 가능한 단순한 냉병기인 대도는 병사 목숨만 붙어있으면 따로 보급이 필요치도 않고 그리 큰 자원도 요구하지 않았음


1930년대에서 칼 들고 전장으로 뛰어가는건 아프리카 오지 부족도 총을 쓰던 당시 상황에선 그냥 멋지게 자살하는 행위였지


하지만 다행히도 중국군의 상대는 일본군이였음







중일전쟁은 일본 입장에서도 우발적으로 시작한 전쟁이었기에


전선은 지랄맞게 넓은데 인적자원이랑 물자는 극심하게 딸렸음


보통이라면 전투에서 이기고 약탈하면 돈이 나올 텐데 전장이 가난한 중국이라 한계가 명확함


전투기와 항공모함 전차가 있지만 연료가 부족했고 심지어 몇몇 최전선 부대는 탄약도 넉넉히 받지 못할 정도로 보급이 개판이였음


상층부는 무사도 정신과 정신력으로 이길것을 요구했고 최전선 부대는 물자가 딸리니 구상한 작전이


우리가 잘 아는 반자이 돌격임





중일 전쟁 초기에는 반자이 돌격이 매우 잘 먹혔음


군벌이라지만 중국군은 훈련이 제대로 안된 민병대 수준이었고


날이 번쩍이는 총검들이 떼로 달려오면 도망가기 일쑤였음


심할 경우엔 총 몇발 주고 받다가 일본군이 떼로 달려오면 전선이 그대로 붕괴되어버림



하지만 난징 대학살 이후로 상황이 달라짐


일본군의 침략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고 중국인들의 생존의 문제가 되어 버림


걍 땅이나 좀 떼주면 돌아갈 줄 알았는데 사실 중국인 말살 전쟁이었던 거임 ㅋㅋㅋㅋㅋ



난진 대학살 이후로도 도망가는 오합지졸 중국군은 여전히 있었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끝까지 맞서 싸우는 숫자가 확연히 늘어남







전쟁이 장기화되자 변화가 생김 


대도만 꼬나들고 싸우던 오합지졸들이 베테랑으로 변하기 시작한거임


초기 반자이 돌격의 성공으로 인해 자신감을 얻은 일본군은 필요 없는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총검 돌격을 남발했고


이는 곧 역풍이 되어서 일본군들은 돌격했다가 중국군의 대도에 갈려나가기 시작함






게다가 일본군의 예상치 못한 약점이 있었는데 제식화가 잘 된 군대였다는 거다


방금 막 징집된 일본군 신병들은 모두가 동일한 제식 훈련을 받았고


중국 검법가들을 이 총검 동작들에 맞게 카운터 치는 검법을 널리 배포함


전선에서 투입된 일본군 신병들은 총검 돌격 할 때마다 떼거지로 갈려나가버림


결국 일본군은 극심한 인력 소모를 도저히 감당 할 수 없었고 중국군은 대대적인 반격을 개시함







일본군은 130대의 전차와 250문의 야포로 난창시를 점령했는데


이때 모인 중화기는 그냥 일본군이 들고 올 수 있는걸 싹 끌고 온 거였음


장제스는 3전구와 9전구한테 반격을 위해서 난창을 탈환할 것을 요구했고


중국군은 수제 박격포와 대도 돌격의 힘으로 일본군을 박살내고 난창시에 진입함







이렇게 개박살이 나자 백병전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일본군은 결국 독가스를 뿌리기 시작함 조오오옷나 많이 뿌림


난창에 진입한 중국군은 서둘러 후퇴했지만 5만명이 죽어버림


이때부터 일본군은 그냥 독가스에 의지하고 중일 전쟁 내내 독가스만 뿌리게 됨


독가스 사용으로 일본은 외교적으로 욕을 처먹기 시작했고


미국이 일본을 경제제재하게끔 만들어 태평양 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됨








중국인들은 오늘날까지도 대도를 자랑스러워한다 카더라


[출처] 중일 전쟁 당시 중국의 버틸 수 있던 원동력.jpg
[링크] http://www.ilbe.com/1088671635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