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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선총독부 중앙청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통치행정기관이었던 조선총독부의 청사 건물.


광화문과 흥례문을 이전하여 그 부지에 건설하였으며 1926년에 완공되었다.


아시아 최대의 근대건축물




광복 이후에는 중앙 정부기관이라는 뜻의 중앙청이라 불리며 


정부종합청사, 국회의사당,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활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식이 열린 장소인 동시에 제헌국회를 개원한 장소.




광복 50주년인 1995년 8월 15일 김영삼 정권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후 IT버블로 승승장구하던 일본 정재계에서 자본을 철수, IMF 외환위기 사태가 오게 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는 국내 기업, 특허 등을 외국에 매각하게 된다.







조선 총독 관저

용산 연회장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 견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은 건축물


국가기록원에 의하면 도심과 거리가 먼 데다 과다한 유지비 때문에 경식 연회 행사 이외에는 사용되지 않아 방치되었다고 한다.


1950년 한국전쟁때 소실되었다.




종로 관저


경무대는 과거 대한민국의 대통령집무실 겸 관저로, 청와대의 옛 이름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조선 총독 관저로 쓰였다가 광복 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이 곳을 경무대로 개칭하였고,


이후 2대 윤보선 대통령이 청와대로 개명하였다.


이후 노태우 정권 때까지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다가 이름은 그대로 유지한 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경성우편국

우편국은 지금의 우체국이다. 1913년 10월에 착공되어 1915년 9월 15일에 준공되었다. 


지하 3층의 연건평 1,320평 넓이로 지어진 이 건물은 19세기풍의 르네상스 구조 양식으로 

외양은 붉은 벽돌과 석조 혼합 건물 위에 청동 지붕이 있는 구조였다.


한국전쟁때 반파되어 1957년에 남아있던 철골을 기반으로 흰색 칠을 하고 보수했으나 1981년에 철거되었다.




동양 척식 주식회사

1908년 일제(日帝)가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하고 경제권 이득 착취를 위해 설립된 국책회사. 



과거 인도의 이슬람 무굴 제국을 식민지화 하였던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모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설립 이후 조선의 경제권 이득 착취와 수탈행위를 일삼아왔다. 


한자만 놓고 보면 '개척(拓)하여 (자국민을) 이식(殖)하는 회사'이지만 무주 황무지도 아닌, 

멀쩡히 주인 있는 땅에 대해 개척 어쩌고 한 데서부터 침략을 정당화하는 구실로밖엔 설명이 안 된다.


풀네임은 '동양척식주식회사' 이며 줄여서 '동척' 라고도 한다.


현 행정자치부인 내무부의 청사로 쓰였다가 철거되고 이 자리에 외환은행 본점이 들어서있다.



















나치

국가총통부

오늘날 독일연방공화국 연방수상의 집무처는 연방수상부라고 한다 이 총통관저는 1939년 독일 뮌헨에 있었던 나치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 하에 만들어진 관사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알려져있다.  나치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가 건축하였다.

큰 건물이라고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총통부 관저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총통 관저가 얼마나 큰 건물인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4,500명을 3교대씩으로 작업하여 완공하였으며, 작센 하우젠 수용소에서 만들어진 벽돌과 화강암 등의 석재를 활용하여 외관을 완성하였다.








전당대회장

뉘른베르크에 있었던 전당대회장 체펠린트리뷴은 히틀러가 군중에 연설을 한 곳이며 나치의 거대 행사가 있을 때 사열을 하던 곳이다.


현재는 중앙부의 일부만 조금 남아있다.








국민대회당

히틀러가 계획한 제3제국의 수도 게르마니아에 건설될 예정이었던 1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돔 건축물

게르마니아는 베를린 시내를 완전히 재건축하는 도시계획이었다.


완공되었다면 오타쿠 구름이 형성되어 건물 내에 비가 내렸을 거라고 한다.














공산

소비에트 혁명 대성전

소련이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 모스크바에서 건설하던 초고층 마천루.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구상된 건축물. 최고층엔 거대 레닌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마르크스 등의 이념 사상가들의 석상도 세워져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듯.

지상 100층, 415m의 높이로 추진되던 건물로 공산당 중앙당사로 계획된 건물이라 스탈린은 모스크바 중앙부에 지으려 했다. 

그러나 이곳은 다른 유럽국가들처럼 이미 역사적인 문화유산들이 빽빽히 들어선 곳이라 부지선정이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 여기던 공산당스러운 마인드로 종교 시설을 파괴하려 결정한다. 

본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이 있던 자리를 1931년 폭파철거한 뒤에 건설하게 되는데,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가 독소불가침조약을 깨면서 독일 공군은 모스크바를 기습 침공하게 된다.

이로 인해 1939년에 폭격을 맞아 공사가 중단되었고, 종전 이후에는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2대 서기장인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격하하면서 끝내 공사를 다시 시작하지 못했다. 








공화국 청사


공화국 궁전은 독일 분단 시절 동독 동베를린에 있었던 청사이다. 남북길이 180m, 동서넓이 85m인 6층 건물로, 백색의 대리석과 청동거울과 같은 색의 유리창으로 외관을 장식하였으며, 내부의 로비에는 1001개의 램프가 걸려있는 등, 흰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부속 시설로는 인민회의장과 볼링장, 식당, 바 등이 있었다. 이 청동거울 유리장식은 한화의 63빌딩 등 여러 건축양식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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