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열차 폭파 사고로 날라가버린 역
역에서 근무하던 철도 공무원 16명을 포함하여 59명이 사망하고 1,15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647세대 7,8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사건의 경위
당시 인천에서 광주로 가던 한국화약(한화그룹의 전신)의 화물 열차가 정식 책임자도 없이 다이너마이트와 전기 뇌관 등 40t의 고성능 폭발물을 싣고 이리역에서 정차하던 중 폭발사고를 냈다.
수사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호송원 신모씨가 어둠을 밝히기 위해 밤에 열차 안에 켜놓은 촛불이 다이너마이트 상자에 옮겨 붙은 것이 원인이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안전수칙을 무시한 일개 개인의 단순과실사고라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총체적 난국 수준인 두말할 나위 없는 인재(人災)였다.
원래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폭약과 뇌관은 함께 운송할 수 없게 되어 있으나 이 원칙이 무시되었다.
철도역의 화차 배정 직원들이 급행료를 챙기느라 화약을 실은 화물열차를 역 구내에 40시간 동안 대기시켰다. 당시 철도법 제61조상 화약류 등의 위험물은 역 내에 대기시키지 않고 바로 통과시켜야 한다. 즉, 뇌물 한두푼을 얻어내기 위해 막아세워둔 것. 뇌물 먹기 위해서 화물열차를 막는 것도 봐가면서 해야 하는데 화약을 실은 열차를 이렇게 했다는 건 명백한 미친 짓이다.
이렇게 길어지는 대기시간에 열받은 호송원이 술을 먹고 열차 화물칸에 들어갔다. 애초에 화약을 실은 화차 내부에는 호송원조차 탑승할 수 없고, 호송원은 총포화약류 취급면허가 있어야 하며, 호송원에 흡연자, 과다 음주자를 쓸 수 없는데 이 모든 것은 깡그리 무시되었다.
화차 내에 화기를 들일 수 없는 규칙을 무시한 호송원 신 씨는 그 안에서 촛불을 켜고 잠이 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열차 화물칸에는 폭발물이 잔뜩 실려 있었다. 문자 그대로 화약고 안에서 불을 붙인 것.
불이 옮겨붙은 상황에서 깨어난 호송원이 침낭으로 불을 끄려 시도했으나, 오히려 불이 더 크게 번졌다. 이는 위험물을 운반하는 열차에 소화기처럼 유사시 사용할 제대로 된 소화기구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약열차에 불이 붙은 것을 안 철도요원들은 모두 도망쳐버렸고, 검수원 7명이 불을 끄기 위해 화차로 달려가 모래와 물을 끼얹었으나 폭발을 막지는 못했다. 역 내에도 제대로 된 소화기구가 없었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앞장서서 도망쳤을 뿐 대피 명령을 내리는 등 제대로 된 대처를 하거나최소한 위험을 주위에 제대로 알리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황.
폭발사고로 이리역에는 지름 30m, 깊이 10m에 이르는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고, 반경 500m 이내의 건물이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는 익산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전라북도 이리시가 익산시로 개명되면서 역도 바뀐 것
선로
시외버스정류장
익산역 구 역사
복합환승센터가 생긴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