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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유력 대선후보 문재인


학력고사에서 전국 수석급의 성적을 거머쥐었었지만 가난했던 그는 서울대 법학과에 진학하지 못하고




총장이 학비를 지원해준 경희대에 입학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장동건을 닮은 이 빼어난 외모로 사법시험에 합격, 뛰어난 성적으로 사법연수원을 차석 수료하였으나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판검사 임용은 되지 못하였다.



現 서울시장 박원순 전 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였다.

그는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된 노무현을 변호한 변호사 중 한명이기도 하다.


이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으나

거절하고 부산으로 낙향한다.



그리고 부림 사건의 '판사 출신 고졸' 변호인 노무현과의 만남




그는 돈을 쓸어담으며 잘나가던 세무변호사를 때려치고

억울하게 빨갱이로 설계된 무고한 학생들을 살리기 위해

인권변호사가 된 사람이다.





그는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의 권유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거쳐 비서실장을 역임하다가




정치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며 공직을 내려놓고





네팔 히말라야 산맥에서 한적한 여생을 보냈으나



그의 기습 탄핵안 가결 소식을 듣고 곧바로 귀국하였다.



참여정부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유시민과 함깨 노무현의 심복이라 할 수 있다






여담으로 원피스의 실버즈 레일리를 닮아 명왕으로 불린다...




특전사 소속 병사 출신으로 (현재 특전병과 달리 특전부사관과 함께 훈련을 받았다)

대다수가 금수저에 미필인 정계에서도 청렴하다 할 수 있으나...


참고로 역대 대통령 중 군필인 사람은 

육사 장성(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군이 되어 별(성)을 단 군인) 출신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제외하면

노무현 밖에는 없다.







군복무 당시의 위병 노무현

사진찍을 때 똘기있는 표정은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이툰 파병부대 방문 당시와 비슷하다






김대중은 해군 목포해상방위대에서 함상 장교로 근무했다고 발언했으나


거짓 조작 날조로 밝혀졌으며,


목포해상방위대 역시 존재하지 않는 부대인 것으로 드러났다.



하여튼, 지금 김대중의 후계자라곤 박지원 정도밖엔 없는 듯 하나 그는 정치원로이지 대통령 감은 아니다.




안철수와 김무성이 그를 계승한다고 주장하나... 박근혜와 문재인 만큼의 당위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후보 검증을 들어가 보자




대통령 권한대행(자) 황교안 국무총리는 두드러기로 군 면제를 받았다.




안철수는 군의관으로 정상적인 군 복무를 마쳤고

박원순은 방위


이재명은 당연히 불구자라서 면제










정치에선 후계자의 정통성이 매우 중요하다.


과거 영국과 프랑스 등 전성기 유럽의 왕실에서는 핏줄 때문에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의 다른 나라에서 왕을 구해왔었다.


수구의 상징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는 산업화 세력의 정통성이 있으며


박정희로 대표되는 경상도 영남 지방의 표에다가


충청도 출신인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지역구 기반 덕에 몰표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개입 사건이라는

전대미문의 (헬)게이트를 열어 집권 여당의 대선은 물건너갔다.


여기서 후보가 나올 수 없으므로 원래대로면 근소하게 뒤쳐진 문재인

민주화의 계보를 잇는 文의 당선이 유력한데, 

潘 前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로 정치판이 요동치며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 최초로 국제연합기구의 최고위직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그 자리에 오르도록 해외 순방을 하여 도와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사망하였는데도

봉하마을 순방은 커녕 유족들에게 위로편지조차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새누리당 쪽의 노선을 염두하여 한 행동일 것으로 판단됨




해외에서 역대 최악의 사무총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주장이 있는데,


실제로 북한의 핵문제나 중국의 미세먼지 문제, 중동의 ISIL테러단 문제, 

시리아 난민 문제 등을 우려만 표명하여 모두 해결하지 못하였다.


최근 UN이 중국에 압박을 가하여 북한의 경제 제제를 가했으나

United Nation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는건 안전보장이사회. (통칭 안보리)


유엔 총회의 사무총장이 안보리의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을 제외한 나라에서 뽑으므로 아프리카의 듣보잡 국가에서도 당선되기도 했다.


물론 반기문의 영향력이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의 유력주자 3후보



박원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식 비리 문제로 지지율이 매우 떨어져 있어 다시는 재기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밝혀낸 양승오 의사(의학박사)가 제기한

아들 박주신의 허리디스크 조작 병역비리 의혹

그리고 최하위권의 성적으로 서울대 미대에서 법대로 전과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딸 박다인

둘다 해외로 날라 행방불명된 상태다.

아들은 영국

딸은 스위스

둘다 유럽의 선진국으로 초호화 유학을 가 있다.



이재명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재명 성남시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으로 스타가 되었는데,

포퓰리즘에도 불구하고 재정이 흑자인 것을 너머 오히려 지자체의 빚까지 탕감했다는

엄청난 행정능력을 겸비했다고 SNS상 전해진다. (사실여부 검증 필요)


초졸 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프레스 압력기에 손이 끼어 장애인이 되었으며

화학약품으로 인해 후각까지 상실되어 일을 못하게 되었는데

법적으로 아무런 보상이 없자


사법 고시에 뛰어들어 합격. 노동 인권 변호사가 된다.


인기와 능력과 더불어 상징성까지 갖춘 인물


그러나 배우 김부선과의 섹스 스캔들,

형수의 보지를 찢는다는 막말로 인해


인성 논란이 일고 있다.


게다가 가족 문제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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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검증 때 고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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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형 이모 씨는 이재선 회계사를 지칭하는 것 같다.




※인터넷에 일베 발 주장이 널리 퍼져 있으므로 

허위사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종필이 '문재인은 말그대로 문제다.'라고 할 정도로 문재인은 문제점이 많다.




그러나 문재인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에게 양보해야 할 입장이나

호남이 지지 철회하면 정계 은퇴한다는 말조차도 지키지 않는 것을 보면

전혀 저럴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입이 무거워야 하는데 너무 가볍고 치졸하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았는데,



이때 대북인권결의안 찬성을 김정일 지시라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문재인

종북 성향만 없으면 참 괜찮은 인물인데 정말 안타깝다.

북한 주민들이 아닌 조선로동당 정부를 대변하니...




현 시국과 관련하여 더 자세한 내용은

http://khariles.tistory.com/643










인스티즈에 올라온 문재인이 살아온 인생


문재인 지지자가 쓴 (매우 긴)글입니다. 지지자가 아닌 분들은 불편하실 수도 있으니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공직 입문 전 인권변호사 시절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인권변호사 시절의 노무현과 문재인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행사에 참석해 함께 구호를 외치는

노무현 의원과 문재인 변호사

그리고

노무현 민주당 경선 승리 후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와 문재인부산선대본부장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함께 선거 유세를 하는 모습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그리고 청와대 입성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2002년 12월 19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

노무현은 대통령 당선 이전에도 문재인에게 부산시장, 각종 지방선거,보궐선거 출마를 문재인에게 권유하였으나

문재인은"자신은 정치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는 이유로 한사코 거절했다.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그러나 노무현은 당선된 후문재인에게"당신이 나를 대통령으로만들었으니 책임져야 할 것 아니냐"며 민정수석직을 강권했고


결국 문재인은"민정수석으로 끝내겠다. 정치하라고 하지 마시라"는 말을 당부하며


2003년 1월 검은 비닐 봉투에 속옷과 양말 등만 싸서 부산에서 상경한다.



문재인은 이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청와대에 왜 왔느냐"라고 묻는질문에이렇게 대답한다.

"노무현 대통령 혼자서 외로울까봐"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2003년 2월 25일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


그러나






첫 민정수석생활은 녹록지않았다.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힘들고 고달팠다"


"언제나 잠이 부족했다. 심지어 치과 치료를 받느라 드릴이 어금니를 긁는 상황에서도 졸음이 쏟아졌다"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문재인은 민정수석으로 지내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업무량때문에매일 격무에 시달렸고


그 사이에 이가 하나하나 빠져나갔다.


1년 만에 이를 열 개나 뽑았다. 지금 발음이 약간 새는 듯 들리는 게 이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녹내장과 고혈압까지 왔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징발령'이 떨어진다.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문재인은당시 상황에 대해"내 의사와 무관하게 총선에 나가야 한다는 징발론이 당에서 제기됐다"면서


"이면에는 나의 원칙주의를 불편해했던 당의 인사들이 차제에 나를 청와대에서 내보내려는 의도도 일부 깔려 있었다"고 했다.

당시 당의 한 원로급 인사가 술자리에서 "문재인 ×××"라고 말한 게 알려지기도 했다.


문재인은 당 측의 인사 청탁을 거의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문재인은 출마요구를 거부하고 민정수석에서 사임한 뒤 히말라야로 떠났다.


자신의 책 '운명'에서"모처럼 꿈같은 자유였다"고 회상한다.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그러나

'꿈같은 자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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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카트만두에서 노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문재인은 급히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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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급하게 변호인단을 꾸리고 탄핵 재판 대리인을 총지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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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탄핵 찬성의원 193명을 대리해 나선 김기춘 위원장

vs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나선 문재인 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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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리멸렬한 법정공방 끝에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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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기각

"오늘로 끝낼 수 있어서 기쁩니다."

탄핵기각 후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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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시민사회수석에 임명되고,

2005년 1월에는 민정수석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2006년 5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다시부산시장에 출마하라는 당의 압박이 거세졌고


문재인은 결국 또 민정수석직을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진심으로 맡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의 정치적 상황이 워낙 어려웠다"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도저히 노무현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었던 문재인은


2007년 3월다시 복귀


마지막비서실장으로 임기 끝까지 노무현의 곁을 지킨다.




2008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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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청와대관저를 나서는 노무현대통령 내외와 문재인 비서실장)

문재인은 경남 양산 산자락에 있는 집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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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심정을"세상과 거리를 두면서 조용하게 살고 싶었다.스스로를 유배 보내는 심정"이라고 했다.


부산 변호사 사무실에 출퇴근하면서 이곳에서 닭도 치고 채소도 가꾸며 지냈다.



그러나


이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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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웃는 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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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또 다시 노무현의 전담 변호사로 복귀하여 변호업무에 착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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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검찰은비인격적이고 강도높은 수사를 진행하며 수사과정 내내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하였고


언론을 통해서는연일 악의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그렇게 검찰과 언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지로 몰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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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문재인은 참담한 심정으로

전 국민 앞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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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긴 하루였다"


"내 생애 가장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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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침착하고 담담한 모습으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국민에게 전했다.




2016년 11월 30일 상지대 학생들과의 시국대화 中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매우 침착하게 언론에 발표하신 걸로 기억하는데 그 당시 심정이 어떠셨나요?"



"많은 분들이 제가 그 당시에 아주 침착하게 냉정을 잃지 않고발표를 했다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사실그 순간 정말 눈앞이 캄캄하고 머리가 텅 비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사실을 어떻게 국민들에게 알릴까 안간힘을 썼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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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노무현의 사망 직후 문재인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가슴이 찢어지는데 눈물은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문재인 변호사는 이 모든 일을 함께했다.

나는 돈 버는 일을 전폐했지만 그는 사무실 운영을 도맡아 하면서 매월 내게 생활비를 주었다.


부산에서 선거를 치를 때마다 있는 힘을 다했고, 대통령선거 때는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아주었다.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으로서 대통령 임기 내내 나를 도와주었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리와 퇴임 후 검찰 수사 때도 내 곁에 있었다.


.. 나이는 나보다 젊지만 나는 언제나 그를 친구로 생각했다.


그와 함께한 모든 일들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며 영광이었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中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남겨진 노무현의 숙제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인터뷰中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현재 심경을 묻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며)


정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죠. 비통한 일이고요..."

"(앞으로 개인적인 계획을 묻자)....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런 수사 과정이나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정말로 세상이 참 싫어졌어요.


세상이 가진 악의들이 무섭구요. 그래서 세상하고 거리를 좀 둬야 되겠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후


문재인은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치와 거리를 두며 그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지 2년이 지난 후에도 그러한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2011년 2월 한 인터뷰中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온갖 출마 요청을 다 거절했는데, 정치가 그렇게 싫습니까.

“체질에 맞지 않습니다. 행복해 보이지도 않고요.


정치를 하려면 두 가지를 갖춰야 해요.


역사가 요구하는 방향과 함께 하는 통찰력,


그리고 그걸 선거라는 과정을 거쳐 현실정치 속에서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에요.


저는 그런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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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멤버를 중심으로 한 친노 그룹은,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던 문 고문을 차기 주자로 일찌감치 점찍어두고 있었다.


"출마하지 않는다는 말만 하지 말아 달라"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하지만 ‘정치인 문재인’은 청와대 멤버들이 보기에도 어색한 조합이었다.


본인 또한 정치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상태에서

결국참모들이 찾은 돌파구는 책을 쓰는 것이었다.



각자가 있던 자리에서 겪은 참여정부를 기록하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이고,


매년 서거일에 맞춰 책을 내기로 한 약속을


그가 먼저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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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은 출간 후 일주일 만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재인은 각종 여론조사기관에서야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에 오르게 된다.

분위기가 슬슬 달아오르자, 참모들은 북콘서트를 기획한다.


처음엔 끝까지 하지 않겠다던 문재인을참모들은 독자들에 대한 예의라며 설득한다.


또한 참모들은 전국에서 요청이 밀려든다는 이유로 전국순회로 판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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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참모 중 한명이었던양정철 전 비서관曰


“과정에서 뭔가가 일어났다.

문 고문의 원래 말투는 건조하게 팩트를 나열하는 식이다.


대중 앞에 나서는 것도 쑥스러워한다.

그런데 북 콘서트 전국 순회에 들어갈 무렵부터,


말에 위트를 섞고 스스로를 연출도 하고,


조금씩 무대를 즐기기 시작했다."


"됐다 싶었다.”

2011년 북콘서트中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 출판한 책이 사랑을 받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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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으신 많은 분들이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지금 저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질문입니다.


실제로,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대안으로 기대를 걸고 계시고,


여론조사 지지도 상으로도 높아지니까 기대를 하시는데,


저로서는 과연 제가 대안이 될 만한 능력이나 자질이 있는지, 두렵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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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소극적이었던 문재인도 북콘서트 횟수가 늘어갈수록 점차 적극적으로 바뀌어갔다.


당시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절망과 회의,


새로운 정권에 대한 희망과 염원을 관객들과 공유했다.

관객들의 반응또한 뜨거웠다.

북 콘서트를 보러 온 많은 관객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문재인 대통령’을 외쳤다.


공연장의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대선에 출마해달라”라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문 재인은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웃기만 했다.

운명과 결심



문재인은 노무현의 벗이자 동료로서


30년이란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오며


늘 노무현의 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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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누구보다 가까이서노무현의 모습을 지켜봐왔던 그는


정치에 엄청난 환멸을 느끼고 있었고


따라서 인생의 매 순간자신을 속박해오는 정치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노무현 때문에 정치의 길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결국 노무현 때문에 정치의 길로 들어선다.

“만일 (노 대통령이) 서거하지 않았다면 정치의 길로 접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노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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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문재인의 <운명>中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가


그를 정치의 길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면


문재인을 향한 간절한 민심은


문재인이 정치에 대한 확고한 결심을 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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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더 이상 국민들의 간절한 민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일하게 박근혜 여당후보를 위협할 수 있는 야당대선주자였고


이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의 절박한 민심과 맞물려나날이 분위기가 고조되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문재인은 정치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결심을 굳히게 된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며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이런 정부가 계속된다면 우리나라는 절단나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염원이 절실하고 절박하다.”









총선 출마, 그리고 2012 대선



문재인은2012년4.11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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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월 17일 대선 출마를 선언을 한 지 두 달 만에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끝내 피하고 싶었던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시대정신 때문에 정치의 길에 들어섰다"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국민의 마음속에서 찾을 것입니다."


"힘없는 사람에게 관대하고 힘 있는 사람에게 엄격한,진실로 겸허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2012.12.19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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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

그리고

문재인의 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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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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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실패이지 새정치를 바라는 모든 분들의 실패가 아닙니다."



문재인은 선거 이후 터져나온 총체적 부정선거 의혹에도


또한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당 내외의 집요한 공세에도


지지자들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다소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저 초연하고 담담한 얼굴로 모두 자신의부족함 탓이라며 오히려 대중들을 위로해주었다.










정치적 동안거 그리고 달라진 문재인



"권력의지가 없어 보인다"

"유약해 보인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주변의 권유때문에 마지못해 나온 것 같다."



문재인은 지난 대선 패배 후 1년여동안 정치적 동안거를 갖는다.


각종세미나나 행사에는 참여하였지만 유의미한 정치적 행보는 없었다.




그리고 2013.11.29


문재인은 기자 간담회를 갖는다.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려는 열정이나 절박함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제게 그 열정과 절박함이 넘쳐나야 민주당에도 전염이 되는 법인데 그러지 못했다"


"2017년에는 반드시 정권교체가 돼야하고 저도 기여할 생각이다, 어떤 역할을 할 지는 국민들이 결정해 줄 문제"


"내가 꼭 (대선 후보를) 해야 한다고 집착하지는 않지만 회피하지도 않을 것"




'국민들의 뜻에 맡기겠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을 기대했던 기자들과의 예상과 달리


문재인은 차기대선 출마의 뜻을 밝히는 데 거침이 없었고


또한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박근혜 정권과의 허니문이 끝났음을분명히 알렸다.


이는분명 이전의 문재인에게선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문재인의 권력의지를 강력히 뒤흔든세월호 사건이 터진다.








문재인이 걸어온 길.jpg | 인스티즈

늘 어디서나 꼿꼿하고 신사적인 모습만 보이던 문재인이 무너져 내렸다.

'노무현의 죽음에도눈시울만 불거질 뿐 잘 견디고


심지어 노무현의 장례식에서


정적 이명박에게도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고고한 처세를 유지하던 그가


세월호의 죽음을 보고 부모가 죽은 듯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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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문재인의 깡이 보이길 시작한다.


신사 문재인은 사라지고 정치가 문재인으로.


권력이 없으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었다는 자책감 피로감 눈물.


세월호의 영령 앞에서 느껴질 자괴감 분노,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절박함.


그 모든 것이 그를 삼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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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서 유족들을 위로하는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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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체육관에서 유족들을 위로하며 곁을 지키는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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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아빠의 단식을말리기 위해시작한 광화문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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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행진)







무능한 정부,




잇따른 실책,




분노하는 여론.





문재인은 사건이 터지자


팽목항에 달려가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유민아빠를 살리기 위해 10일간의 단식을 하기도 하고


청와대 앞에서 비를 맞으며 특별법 제정 촉구 시위에 나서기도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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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속은 끓어오르는데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전당대회 출마, 그리고 달라진 행보





그리고 2014년 12월 29일


문재인은 당대표 선거에 나선다.

그리고 그의 연설에서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절박함과 간절함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독해지겠다”


“흩어진 48%를 다시 모으겠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


다시는 1∼2%가 모자라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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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총선 승리를 이끌 적임자입니까?


누가 정권교체를 가져올 최고의 적임자입니까?


여야를 통틀어 최고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저,문재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당대표직은 분명히 독배였다.


당 내의 권력을 틀어쥐게 되지만총선을 승리 시키지 못하면


당대표로서 책임을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정치인생을 건 위험천만한 도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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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을 살리지 못한다면, 총선 승리 못한다면,


제가 어떻게 대선 후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사즉생(死卽生), 죽기를 각오하고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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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라서 경상도라서 안 된다는 겁니까?

제가 목숨을 바쳐서 반드시 총선승리와 정권교체를 가져와서


이명박근혜 집권을 끝장내겠습니다.




제가 상처 받고 망가져서 저에게는 다시 기회가 없어진다 해도,



우리 당을 이기는 당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제가 정치에 뛰어든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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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대선, 지방선거 모두 패배


계파갈등에서 비롯된 내부적인 당 파열


그리고 당장 내년에 있을 총선거


가까스로 대표는 되었으나 당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문재인은 말그대로


당 혁신을 위해, 내년 총선의 승리를 위해,그리고 나아가 대선 승리를 위해


본인의 모든 정치인생을 걸고 뛰어든 것이다.











'대표당선 이후 문재인은 대권행보를 시작한다.


노무현의 유산을 받은 고고한 선비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 스스로 서 버린 것.


이제까지는 노무현의 그늘 아래에 있던 그가


노무현의 길을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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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첫번째가 이승만 박정희 묘소 참배였다.


문재인으로서는 정말 고통스러운선택이었을 것이다.


박정희에 항거하던 그가 이제 정치가의 길로 들어선게 보이니까.


그렇지만 그들역시 대한민국의 역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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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국민적 갈등과 논란을 종식시키고

과거의 공과를 분명히 인정하겠다고 천명한다.

문재인의 이러한 변신은 분명히 강렬한 권력의지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한 표라도 더 끌어 모아서 반드시 집권하여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는 강력한 집권의지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은 본격적으로 당의 체질개선을 위한당 개혁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반발에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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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과 조경태는 공천권, 안철수는 대선후보, 김한길은 당권을 두고 문재인과 대립한다.

문재인은야권분열을 막고자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이들의 의견을 수용하고화합하려 노력했으나


이들은 끝내 분란과 갈등만 거듭하다대거 탈당해버린다.

그리고 2015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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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문재인은 당 인재영입위원장을 겸하고 인재영입작업에 착수한다.


그리고

이는 곧 신의 한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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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활약으로 각계각층의 인재들이 영입됨으로써

거물 정치인들의 탈당으로 인한 당 내 불안감을 안정시키고


뿐만 아니라


새로이 영입된 인재들의높은 전문성과 참신함은


당의 이미지 쇄신에도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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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에서

문재인은 전국방방곡곡을 넘나드는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며


후보 단일화와 지원 유세를 도와 총선승리에 기여하였고

또한문재인발 영입인사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내 본인의 입지를공고히 한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엔


역시나 전국순방을 돌며 각종 집회,시위,연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국민과 소통하며 관심을 환기시키고 민심을 끌어모으는데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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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치며

4년 전 문재인은 야당의 유력 대선후보였지만 여전히 정치가 두렵다고 말했다.

2012년 1월 9일 방영 힐링캠프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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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문재인에겐 정치란


노무현이 건넨 '운명'이라는 독배를 받아들고


어쩔 수 없이 택한길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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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4년 뒤 지금의 문재인은 조금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다.

"대한민국의 기적을 다시 한번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감히 그 역할을 해보고 싶습니다."


2016년 11월 23일 강연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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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문재인을 보고 너무 유약하다고, 권력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노대통령의 서거 후 일련의 사건들은 문재인을 각성시켰고


문재인은 그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간절하고 절실하게


권력의지를 희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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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재직시절 문재인의 별명은 노무현의 그림자였다고 한다.

그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노무현의 한 발 뒤에서 그저 묵묵히노무현의 뜻을 따랐다.




그러나

노무현의 뒤에서 늘 엷은 미소를 걸치고


묵묵히 그의 뜻을따르던 점잖은 비서실장은


이제 온데간데 없다.





오직




집요한 권력의지와 스스로의 강단만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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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자신의길을 나아가는


정치가 문재인이 있을 뿐이다.



인용한 글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sisa&no=611774


http://cafe.daum.net/ASMONACOFC/gAVU/209356(I LIKE SOCCER/Radiohead)


http://cafe.daum.net/ASMONACOFC/gAVU/249586


그리고 각종 인터뷰와 기사, 다음카페 젠틀재인, 사람사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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