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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인력거
대단지 아파트 현장에서 똥떼고 11만원 받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짓이긴한데
출퇴근 편하고 밥 잘 나오고 내가 쉬고 싶을때 쉬는 생활과
퇴직공제가 꾸준히 쌓인다는 장점 때문에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몇 달을 했던거 같음.


다른 현장은 똥떼고 12.5정도를 받았지만
서로 기피하는 현장이라 아무도 안가려고 해서
인력소에서 나이가 어린쪽에 속하던 나에겐
따로 선택권이라는게 없었다.

주업무는 자재 정리라곤하는데 단지 내 온갖 잡일은 다 했다.

여름에는 땡볕아래서 머리에 물을 뿌려가며 열을 식히고
폼정리, 쁘렉카, 쓰레기 청소, 투바이랑 화목재기
사뽀도, 파이프 정리, 삔이랑 타이줍기 등을 했었고
겨울에는 온풍기 설치, 기름통, 소화기 비치
공구리 타설 후 갑빠 쳐놓은거 해체 후 정리 등등

여름에 했던 일에 또 추가로 좆같은 일을 더 했었다.
여름부터 작년 겨울까지
폭염과 한파를 온몸으로 때려 맞으면서 일했지만
가장 힘든건 일 보다 사람이였다.


일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사소한거 하나에도
수십마디의 잔소리를 늘여놓으며
어떻게든 완공 때까지 꿀 빨아보려고 같이온 인력거들을
쥐어 짜내며 남들 몰래 단가도 더 받아가던
50넘은 전라도 출신 팀장과


그 팀장 옆에서 온갖 아부와 촉새짓거리를 하며
기술도 없고 능력도 없고 일할 의지도 없으면서
직영반장과 과장 눈치나 보며 스스로 노예임을 자처했던
앞니가 다 썩어 입냄새가 심했던 50넘은 토토쟁이 쌍도 새끼


인력거를 사람이 아닌 개정도로 취급하며
"너희 인력 새끼들" 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나이만 쳐먹을대로 쳐먹은 전라도 출신 직영과장과


일머리라고는 개좆도 없어서 항상 일을 두번 세번 하게 만들며
이새끼는 중국인인가 조선족인가 했갈리게 했던 직영반장 1번


반생이 하나 묶는거, 투바이 하나 치우는 것도
본인 손으로 직접하기가 싫어서 단지 끝에서 끝까지
사람을 왕복 시키며 노예 다루듯 부려먹던 직영반장 2번


저 현장 도저히 못가겠다고 다른 현장에 좀 보내달라고 했더니
갈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며 그냥 좀 들어가라고
내가 젊다는 이유로 인력 나가는 마지막 날까지 등을 떠밀고
이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일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소장님 부탁드립니다 라는 요청에도 대답도 없이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리던 인력거 소장 등


좋은 사람들도 분명 많았지만 모두가 떠나버리고
저런 쓰레기들만 모아둔 현장에서
하루하루 좆같음을 견뎌내며 멘탈을 단련시켰더니

지금도 육체적으로 힘든일을 하긴 하지만
좋은 사람들 만나서 정당한 댓가 이상의 과분한 대접 받으면서
하루 하루 즐겁게 보내고 있다.

내 인생에 있어 다시는 인력거를 하기 싫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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