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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들어가기에 앞서, 지미 카터가 독재자 킬러라는 얘기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오로지 한국에서만 통하는 농담이니 참고하도록 하자. 구글에서 Jimmy Carter the Dictator Killer 같은 식으로 검색해도 유의미한 정보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독재자 킬러로 알려져 있다. 카터가 만난 독재자들은 거의 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기 때문이다.
1977년 파나마의 독재자 오마르 토리호스를 만났는데, 1981년 비행기 추락사로 4년만에 사망했다.
1978년 이집트-이스라엘 간 캠프 데이비드 협정 때 미국을 방문해 카터를 만났던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는 이 일로 노벨평화상은 수상했지만, 3년 후 1981년에 과격파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같은 해 만난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이란 국왕도 다음해인 1979년 이란 혁명에 당해 쫓겨나 외국을 떠돌다 망명지 이집트에서 만난 지 2년 후인 1980년 사망.
1978년 만난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12년 후 1989년 동유럽 혁명 와중에 다른 동유럽 공산권 지도자들처럼 퇴진을 거부하다 유혈혁명으로 총살.
1979년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II)을 맺기 위해 만난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소련 서기장은 3년 후인 1982년 사망.
5.16 군사정변 이후 16년[59] 동안이나 대통령으로 집권했던 박정희는 1979년 카터와 한미정상회담을 한 이후 4개월 만인 그 해 10월 김재규에 의해 저격당했다.
1994년 6월, 카터가 미국 특사 자격(이 시점에선 전직 대통령)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났지만 그는 14일 만에 죽었다. 카터에게 당한 역대 최단기록 사망자. 그런데 김일성의 경우엔 정말로 카터 때문에 죽었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 카터가 주선한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느라 김일성의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다는 의견이 나와서다.
2010년 8월 25일 북한을 또 다시 방문했으나, 이 때 김정일은 김정은을 데리고 중국을 방문했다. 다음 해인 2011년 4월 28일에도 북한을 방문했으나 역시 김정일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덜컥 사망한다. 당시 북한은 외국인들의 조문을 안 받겠다고 발표했다. 기사. 기사
2004년 8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재신임 투표 개표상황를 감시하고자 14개국 참관인 수백명과 함께 방문하여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만났다. 차베스는 그 선거에서 58%의 득표율[60]로 재신임에 성공했지만, 이후 갑자기 암에 걸려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한다. 또한 카터가 2009년에 한 번 더 방문했는데, 그 이후 차베스는 최후의 발악으로 2012년 대선에서 자기가 직접 출마하기도 했으나 2013년 3월에 사망했다. 처음 카터와 만난 지 9년 뒤의 일이다.
그를 만나지 않은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그래도 40년을 잘 살았지만, 그 대가(?)로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과 1차 리비아 내전 이후 끔찍하게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다. 게다가 오디세이 새벽 작전을 이끈 당시 미군 아프리카사령부(AFRICOM) 사령관의 이름이 하필이면 카터 F. 햄 대장이었다.
2013년 5월 초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씨[61]의 석방을 위해 방북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 카터 측에서는 대변인을 거쳐서 초청을 못 받아 방북 계획을 안 세웠으나 방북 의사는 확고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리고 2014년 9월 김정은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보도가 나왔다. 북한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상태. #
2008년에는 카이로에서 이집트의 독재자인 호스니 무바라크가 회담을 가졌는데, 2012년 6월 무바라크가 혼수상태에 빠졌고 사실상 사망 취급받았다. 무바라크는 나중에 운이 좋게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였으나 그것도 잠시, 8년 후인 2020년 2월 25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피델 카스트로는 카터의 2002년 방문 후에도 14년 동안이나 장수했다.[62] 또 2010년 카터가 방문할 즈음 이미 카스트로는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좌를 물려주는 작업을 하며 자신의 독재를 스스로 그만둬서 카터의 저주를 피해버린 셈이 되었다(참고로 이 매치는 김정일 원격 방문보다 한 달이나 먼저 있었다). 하지만 불사신 카스트로는 사신 카터에게 치명상을 입었다. 이후 2011년 3월에 벌어진 리턴 매치에서도 카스트로는 목숨을 건졌지만 그의 연인이 대신 죽었다. 모두 카터가 방문한 이후 4년만에 벌어졌다. 그뒤 갑자기 카터가 뇌암에 걸렸다. 이로서 둘의 대결은 카스트로의 역전승으로 끝나나 했더니 그 후 2016년 11월 25일에 피델 카스트로가 사망했다. 다만 다른 독재자들처럼 임기 중 병사나 사고사한 게 아니라 그가 90살 먹은 고령이라서 자연사이고 이미 2008년에 정권을 물려준 상태라서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독재자들에 비해서는 꽤 오래 버텼다. 카터가 2002년에 만난 이래 14년. 2011년 재회담을 포함하면 5년이다.[63] 한편 카터는 완치되면서 고령 통치자의 단두대 매치에서 탈출했다.
2019년에는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전 대통령이 카터와 만난 지 무려 39년 만에 사망했는데(같은 1924년생이지만, 카터보다 8개월 일찍 출생), 이쪽은 술담배를 피하고 채식과 운동을 즐기는 등 건강한 생활을 해온지라 불사신으로 유명했던 카스트로와 비슷한 케이스다. 아이러니하게도 무가베는 본인이 100세까지 될때 까지 집권한다 발언했지만, 정작 본인 나이가 100세가 되지 못한채 사망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독재자 킬러라는 이미지는 그냥 우연과 끼워맞추기의 산물일 뿐이다. 우선 카터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라는 매우 높은 지위에 있던 인물이며, 유화노선인 민주당 정권의 대통령이었고, 해외 봉사에 적극적인 등 도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즉 미국에서 적성국과 외교관계를 맺을 때 적대적 이미지를 주지 않으면서 비공식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방문을 거절하기도 힘들만한 '급'이 되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94년 북핵 문제 때는 거의 전쟁 직전[64]의 상황이었으나 김영삼의 강경노선을 원치 않았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카터를 파견했고, 카터의 방북 이후 북한의 본심을 어느 정도 파악한 뒤 유화책을 쓰면서 전쟁 위기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이 때 카터를 파견할 것을 제의한 인물은 당시 해외 거주 중이던 김대중.#

또한 카터가 만나려 하는 독재자들은 애초에 주위의 어그로를 지나치게 끌거나 독재가 장기화되어 문제를 노출한 독재자이거나 딱 봐도 늙어서 오늘 내일하는 독재자이다(대표적으로 북한의 독재자들). 이런 사람들의 명줄이 길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카터가 이런 독재자들과 굳이 만나는 것도 이로 인해 갈등이 터지거나, 터지기 직전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유독 한국에만 이런 이야기가 퍼진 것은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둘 다 지미 카터를 만난 직후 사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 명단을 봐도 다른 독재자들은 카터를 만난지 최소 몇 년 뒤에 사망했기 때문에 개연성을 찾기 힘들지만 박정희와 김일성은 카터를 만난 지 몇 개월 내지 몇 주만에 사망했다. 게다가 둘 다 죽음의 원인에 카터가 약간이나마 연관이 있다는 진지한 분석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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