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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 청사

서울특별시청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조선 한성부 청사는 지역별로 서부, 동부, 남부, 북부, 중부 청사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이 중 중부 청사는 세종대로의 미국 대사관 인근에 있었다. 이후 고종 대에 경희궁 인근으로 이전하였다가 여러 장소를 전전하게 되었으나..


경성부 구 청사

구한말 격동의 시기 을사조약이 맺어지며 일제는 조선에 통감정치의 마수를 뻗치기에 이르렀고 이에 현재의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SC제일은행 제일지점을 합친 부지에 있던 구 일본영사관을 통감부가 각 지방행정 처리를 위해 설치한 관청인 "이사청"으로 개칭하게 되었으며,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엔 다시 "경성부청"으로 개칭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동 시기 인천부청 또한 영사관-이사청-부청 순으로 개칭되었다.


경성부 신 청사

이후 1926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경성 인구로 인해 더 이상 이 작은 청사에서는 경성의 행정 업무를 돌볼 수 없다고 판단한 총독부는 현 서울시청 본관 부지에 있던 경성일보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경성부청 청사를 짓게 되었고 이 건물이 바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서울시청 구 청사, 현 서울도서관 건물이다. 이 당시 건축 설계 총책임은 일본인 3명으로 이와이(경성부 간부), 사사, 이와츠키로 되어있는데 조선인 장연채도 참여했다고 되어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건축미학적 면에서 따지면 딱히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인정되지 않는다. 식민지 시스템의 일부였다는 점에서는 조선총독부와 유사한 사례. 평가절하되는 원인 중 하나가 보통 위압감인데, 이와츠키가 한 "관청 건물이 추구하는 위엄성을 배제하여"란 말로 볼 때 일본인 건축가들은 의외로 건물이 주는 위압감을 낮춰보려고 했던 모양이다.

시청 건물이 지어진지 80년 가량 지나며 이 본관 또한 1,000만 서울시민의 보금자리가 된 서울의 행정을 처리하기엔 협소하게 되었고 신청사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조감도 1
조감도 2
조감도 3
조감도 4

보다시피 다섯 번이나 설계를 해서 만든 건물이다.

문화재법상 덕수궁의 경관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어려운 조건이 붙었다.

문화재 근처의 고층건물은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허가를 얻으려면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삼우 건축 설계의 다섯 개 안이 모두 덕수궁의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으며 서울시에서는 이에 따라 명망 있는 건축가들의 디자인 설계를 공모해서 컨센서스를 이끌어내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공모에서 선정된 것이 건축가 유걸의 작품.

1과 2는 같은 설계자가 했다. 참고로 두 설계 모두 런던 시청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위치도 위치고 건물의 상징성도 있어서 둥글둥글 항아리나 저고리 모양 등에서 가져온 곡선을 써봤으나 거대한 건물이 주는 위압감이 덕수궁의 경관을 해친다고 해서 딱지를 먹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태극 모양을 가져왔으나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딱지. 그리하여 3번째가 나왔는데 거대한 매스가 주는 위압감을 줄여보기 위해 매스를 분절시켜 보았으나 대중들의 반응은 성냥갑이었다. 문화재청에서 디자인 자체는 그럭저럭 승인하였으나 문화재 앙각 규정 등으로 높이나 형태 등에 일부 수정을 요구하였고 이렇게 4번째 안이 나왔으나 이번에는 너무 단순 무식해서 서울 시청의 위치나 역사적인 면에서 상징성이 부족하여 서울시 쪽에서 딱지.

결국에는 높이가 대폭 낮춰지고 한옥의 처마선을 딴 형태가 나오게 되었다. 문화재청에서 항아리나 태극은 덕수궁의 경관을 해친다면서 처마선은 괜찮아 보였는지 이번에는 통과... 이 문제에 대해서 유리궁전 양식 그 자체가 문제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일단 서울시 청사의 경우 대지에 걸린 제약 자체가 엄청난 난제였다. 모든 설계안이 전체적으로 동고서저의 형태를 띄는데 이는 덕수궁 담장에서 27의 각도로 올려다 볼 때 이 높이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문화재 앙각 규정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건축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냥 시청 이전이 더 간단한 해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때부터 전체적인 연면적이 축소 되고 시민들을 위한 각종 시설들이 들어오면서 통합청사 떡밥은 거의 묻히게 되었다.


서울특별시청사

2012년 5월 24일에 가림막이 완전히 철거되면서 외관이 완전히 공개되었다.

그런데 막상 외관이 드러나자 구청사와의 부조화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유리 궁전으로 지어 여러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당시 서울시에서는 특별한 유리를 사용해서 에너지 효율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 말은 개소리였음이 이듬해 폭염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너무 튀는 외관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인근의 건축물들과 조화를 생각해야 되는데 지나치게 화려한 디자인으로 마치 나만 잘났다는 듯이 서있는 건물은 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현재의 건축 트렌드의 반영이라는 옹호도 있다.

그 위압적인 광경은 보통 파도, 쓰나미를 연상시킨다며 까인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서울시 청사가 쓰나미를 닮아 일본식 건축물인 구 청사를 덮치는 형세다.' 라고 하여 논란이 되었다고. 한옥 처마를 재해석해 디자인해서 그렇게 생긴 건데, 건축가는 이 까는 소리를 듣고 파워풀하다며 좋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서울시 내부에서는 디자인만 화려하고 정작 실용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유리궁전 골조 때문에 시장실조차도 광장 조망이 영 좋지 않으니 호불호를 뛰어넘어 자타공인 시망 건물이 될 것 같다. 박원순 전 시장도 내부 마감재 공사기간에 신청사를 둘러보고 3,000억이나 들인 건물이 이렇게 비실용적인가라고 한탄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조망 부문의 경우 일반인들도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시청사 8~9층에 '하늘광장' 이란 이름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공간이 있는데 건물 골조 때문에 조망이 매우 힘들다.

또한 건축 과정을 턴키 방식으로 했다는 것도 문제다. 이는 건설회사가 건물 지어지는 모든 것을 다 해먹기 때문에 건축주한테는 편해도 건축가의 디자인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방식이다. 실제로 서울 신청사도 건축가 유걸은 좀 더 나은 디자인을 원했는데 턴키의 문제 때문에 건물이 절반쯤 지어진 다음에야 자기 의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유걸 본인이 “결과만 놓고 말하면 신청사 외관은 내가 상상한 이미지가 거의 그대로 구현된 결과물”이라고까지 말한 것을 보면 턴키의 문제 자체는 인정하지만 딱히 자기 생각을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광복 이후 경성부가 서울특별시로 바뀐 직후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판이 사라지고 그 위에는 '서울도서관' 이라 쓰인 현판이 등장했다. 옛 현판은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 중.

매끈한 곡선 스타일의 건물 구조상 겨울철에 위험하다고 한다. 물이나 얼음이 흘러내릴 길이나 완충되는 턱이 없어서 그대로 흘러내리다보니 얼음이 얼었다가 살짝 녹으면 얼음 폭탄같이 떨어진다. 결국 완공 이후 첫 겨울부터 눈 한번 오자 바로 시청 뒷길이 통제되었다. 문제는 이 길이 단순 뒷길이 아니라 서울광장 조성을 위해 교통체계를 바꾼 이후로는 남산 3호 터널 방면에서 세종대로 쪽으로 빠지는 주 통로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 때문에 건물 외벽에 열신을 추가해서 얼음이 얼지 않게 하려는 계획이 있지만 잘 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말에 따르면 원래 디자인 과정에서는 그러한 계획이 있었는데 실시설계 단계부터 턴키 방식으로 인해 모든 권한이 넘어가버려서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된 이후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고 한다.

2013년 동아일보와 건축전문잡지 SPACE가 건축가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태작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건축가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일제도 공을 들인 서울의 심장부에 우리 스스로가 가장 큰 실수를 했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외계에서 온 건물 같다." 그리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들어서자 둘이 서로 악평을 비교당하는 신세가 됐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프로젝트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결과를 내길 강요한 측면이 크다. 당장 구청사, 서울광장, 덕수궁이라는 세 가지 기존 건축과 어울리는 건물을 설계하는 것도 어렵지만, 시청 업무공간과 공공시설물을 위해 최대한 넓은 연면적을 확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대문 안 고도제한 98m 규정과 문화재 앙각규정 등의 규제를 준수해야 하는 등. 위에서 언급했지만 사실 건축적으로만 따지면 시청을 옮기는 것이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하지만 서울 건축의 맥락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일 된 의견이 없어서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새로 건물이 올라갈 때마다 서울의 맥락에 맞지 않는다고 하지만 도대체 서울 건축의 맥락이 무엇인지 제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따라갈 맥락이 없으니 새로 올리는 건축물이 중구난방인 건 어쩔 수 없는 결과인 것이다. 신청사 혼자서 튀는 건축을 올린게 하니라 한국 건축의 맥이 원래부터 여러 양식이 혼성되는 맥을 형성해 왔던 것이다.

여름에는 이 건물의 유리골조로 인해 여름에 찜통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나름 이 문제를 막기 위해서 적은 에너지로도 효율적인 냉난방이 되도록 신경써서 공조 설계를 하였고 더더욱 친환경적인 건물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2013년 전력대란에 따라 시행된 절전 정책은 관공서의 모든 냉방 및 공조 장치를 아예 끄도록 하였고, 에어컨 및 선풍기를 일제히 껐더니 순식간에 내부 온도가 35도 이상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결국 우려했던 대로 건물 전체가 엄청난 폭염의 찜질방 내지는 거대한 비닐 하우스가 되어버렸다고 하며 근무시간 내내 공무원들이 엄청나게 괴로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심지어 계급 높고 짬밥 높은 고위공무원들은 도저히 참다못해 건물 안에 있는 목욕탕에서 단체로 냉수목욕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실로 복귀해 업무를 시작하려고 하자마자 또다시 온 몸에 땀이 줄줄 흘릴 정도로 엄청나게 더웠다고 한다.


서소문 별관

서울특별시 중구 덕수궁길 15 (서소문동)에 있다. 본래 대한제국의 탁지부 청사와 일제강점기의 중추원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1975년에 대검찰청 청사로 준공되었으며, 검찰이 서초구 서초동 법조타운에 1989년 청사를 신축하여 이사를 가면서 서울특별시청에서 사용하고 있다.
1동 : 여러 실/국/본부의 사무실이 있는 15층짜리 큰 건물. 13층에는 덕수궁을 비롯하여 정동-광화문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동전망대가 있으며,[17] 2021년에는 1동 건물 전체 외장 공사를 하였다.
2동 : 서울시의회 (각 위원회별 회의실, 의원회관 등)
3동 : 1동 건물 옆에 있는 3층짜리 낡은 건물. 스마트도시정책관이 사용하고 있다.
5동 : 감사위원회
후생동 : 직원식당, 강당, 매점 등

2008년 서울시청 본청 공사 기간에는 시장실을 비롯한 본청 주요 부서가 이곳으로 이전됐다가 2012년 본청 공사가 끝나면서 다시 본청으로 사무실을 옮긴 역사가 있다. 또한 직원 구내식당으로 쓰이는 후생동 건물 옆에는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이 있다.

시립미술관 및 서소문 청사 2동과 5동 사이에 서울시청CNG충전소가 있었다. 이 충전소는 용산구, 서대문구, 동작구 등지의 마을버스, 서울 버스 502등이 충전하러 자주 드나들며 밤낮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곳이었으나, 2021년에 수소충전소 공사를 위해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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