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한반도의 명산

2017. 2. 7. 05:47

시간여행가 여행/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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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1,638m에 태백산맥 북부 강원도(북한) 금강군·고성군·통천군에 걸쳐진 산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금강산과 그 일대의 모든 산줄기들을 싸그리 금강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금강산하면 떠올리는 것은 역시 금강산과 그 일대 산을 모조리 묶은 1만 2천 봉우리고[4] 그 중에서 비로봉이 가장 눈에 띈다. 금강산을 주제로 한 동요와 가곡이 있을 정도다.


계절별로 이름을 따로 가지기로 유명한데, 이는 각 계절마다 전경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으로 불린다.

어쨌든 백두산과 개마고원과 함께 벌목이 금지되어있으나...

(백두산의 절반은 중국에 팔렸지만)




고대 중국의 역사서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로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조선시대 수많은 문인들이 금강산을 읊은 작품들이 수없이 많은 점에서도 그렇다. 그저 유람하기 위해서가 아닌 목적에서 금강산 정상에 처음 오른 인물은 신정왕후 조씨의 조카인 조성하였는데, 이가 1865년에 있었던 일이다.

일찍이 금강산의 경치는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태종이 명나라 사신이 올 때마다 자꾸 금강산 타령을 해서 귀찮아한 이야기도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한반도 최초의 전기철도인 금강산선을 직접 건설하고, 일본 본토에 있는 일본인들이 일부러 서울까지 와서 열차를 타고 금강산을 여행할 정도로 금강산 관광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한 일까지 있다. 1926년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6세가 왕세자 시절 금강산을 방문하여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할 때 하루는 금강산을 만드는 데 썼을 것이다." 라고 감탄한 적도 있었다.

그때 활용했던 금강산 전철은 하필이면 노선 대다수가 민통선 및 비무장지대와 일치하는 바람에 지금도 복구하지 못 하고 있다. 거기다 일부 구간은 금강산댐 건설로 수몰된 상태다. 자세한 것은 금강산선 항목을 참조하자.

휴전선과 약 20km 떨어져 있으며 삼일포 등의 권역까지 합하면 고작 7km밖에 안 된다. 그래서 1951년 4월 ~ 5월 조금만 더 북진을 했으면 금강산을 점령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백선엽 장군의 회고) 설악산이 금강산인 줄 알고 진군을 멈췄다 카더라 통천군 이남은 모두 금강산 권역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지역을 다 점령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므로 아쉽지 아니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의 동해안 방면 휴전선은 거의 자연계곡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므로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지역을 먹었다면 군사적으로 원산시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만약 대한민국의 (실효지배)영토였다면 금강산은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2봉 반야봉 1,732m), 설악산(1,708m)에 이은 대한민국의 4대 산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역시 아쉬운 일이다.










북한 정부에 의한 환경 훼손이 매우 심각하다

조상님들께서 통곡하실 노릇...







1998년 11월 18일부터 현대아산을 통해 한국에서도 직접 금강산 관광이 가능하으나, 2008년도에 발생한 금강산 피격 사건 이후 단 1명의 대한민국 관광객도 금강산 관광지구에 들어가지 못 하고 있다.

사실 1988년에도 정주영 회장이 추진하였으나 남북고위당국자 예비1차회담에서 북한이 팀 스피리트 훈련의 무조건적인 중단을 주장하는 어거지를 써서 실패하였다. 지금이야 이야기거리지만 북한이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금강산 관광을 시작하지 않을 거라는 우려는 1999년에도 있긴 했다. 그러나 결론은 10년간 그래도 관광. #

당시 금강산 관광의 대상자는 한국 내국인에게 국한되어 있었으며, 외국인은 내국인의 관광상품을 이용하는 것으로 한정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금강산을 관광하는 도중에 외국인을 만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홍보가 덜 되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홍보를 제대로 하고 외국인 관광코스도 마련한다면 아마 외국에서도 반할 것이다. 그 정도로 경관이 빼어나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2007년을 기준으로 1박 2일, 즉 호텔 1박은 최성수기 + 주말에 인당 금강산 호텔 34만원, 해금강 호텔 29만원이었다.그분은 한 번밖에 못 가신다. 물론 비수기 평일로 하면 이 가격은 28만원, 23만원까지 낮아지지만 결코 싼 가격은 아닌 것은 분명했다. (2박은 초기에 인당 80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그나마 육로 관광으로 낮아진 가격이 인당 35만원. #) 덤으로 점심, 저녁식대(각각 10달러)와 온천욕(12달러), 교예공연관람(25달러), 삼일포관람(1만원)이 옵션이었다. 게다가 새벽 6시까지 강원도 고성에 알아서 도착해야 한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금강산 관광 인원의 상당수는 정부 보조를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아산이 50년 동안 독점을 위해 6년 3개월 동안 9억 4,200만달러, 실제로는 4억 9,000만달러(5,000억원 상당, 현금 1억 4,000만원)의 어마어마한 비용을 내야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만약 5,000억 원을 50년으로 나누어 계산하면 10년에 천억 원 꼴인데, 이건 실제 관광객 10만 명에 비해 매우 큰 액수였다(인당 100만원 꼴). 

다만 당시 현대아산 임직원 및 가족은 사원복지 차원에서 금강산 관광을 갈 수 있었고, 전국 사회(역사 포함) 교사들을 차례로 선발하여 금강산 관광을 보내 주기도 했다. 이 사람들은 대체로 편히, 그나마 덜 비싸게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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