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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총독 관저 연회장


서양 대부호 귀족의 정원이 딸린 호화로운 대저택이 연상되는 매우 인상적인 건물인데,


조선일본군 사령관저로 건축됐다가 나중에 조선총독관저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1936년 이후에는 총독이 조선 팔도의 80세 이상 장수노인들을 매년마다 초대해서 경로잔치도 열었으며


국가기록원에 의하면 도심과 거리가 먼 데다 과다한 유지비 때문에 경식 행사 연회장 이외에는 사용되지 않아 방치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2차세계대전에 태평양 전쟁으로 참전하면서 자금이 부족했을거라 추측된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때 소실되었다.




일본인 건축가 가타야마 도쿠마가 설계하였는데, 이 일로 1908년에 고종 황제로부터 팔괘장을 수여받았다.



그는 아카사카 이궁과 표경관 등을 건축하여 엄청난 이름을 날렸으며 네오바르크 양식의 궁정 건축을 선도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이 사진은 증축 이전의 용산 총독 관저



이 관저에서 내다본 사진






남산 총독 관저 왜성대


갑신정변 이후 을사조약에 의거해 설치된 기관. 통감부 청사로 사용되다가 신 청사가 생긴 후 통감 관저로 쓰였다.


1910년 이후엔 총독 관저로 사용됨.




광복 이후에 국립민속박물관으로 개관하었다가 이후에 연합참모본부의 청사로 사용되었다.


건물이 언제 철거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종합방재센터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다목적 광장이 이 건물이 있었던 위치로 추정된다.






북악산 총독 관저 경무대


이 건물은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며 뒤편에 지었던 4개의 후원 건물들을 조선총독부가 철거하고 지은 건물이다.

미 군정 장관의 관사로 쓰이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통령의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되었다.


이승만은 경복궁과 신무문의 이름을 따서 경무대로 명명하였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서 노태우 대통령 까지는 이 건물에서 지냈는데, 중앙청으로 사용되었던 조선총독부처럼 이 청와대 구 본관 역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시 하에 철거되었고 이후 현재의 청와대를 신설하였다.




경무대라는 이름이 독재정권을 연상시킨다 하여 2대 윤보선 대통령이 

청와대(靑瓦臺)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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